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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울산에서 태화루 복원을 위한 기공식이 있었다. 오늘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대곡천 암각화군 보존을 위한 국제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태화루 복원과 암각화군 학술세미나가 비슷한 시기에 열린 것은 우연의 일치지만 두 가지 사안 모두가 울산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태화루의 복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가지다. 과거를 복원해 사라진 상징물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접목하는 의미라는 시선과 굳이 잃어버린 과거를 더듬어 현재의 기술로 다시 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시선이다. 이같은 시선 속에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생각도 깃들어 있다. 암벽에 새긴 고래무리들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건져 올리자고 야단이냐는 소리와 무슨, 인류사의 유일한 족적을 수장시켜 사라지게 하는 과오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데는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길찾기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난 과거를 스스로 천대하는 못난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의 결과는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폄하로 이어지고 오늘과 현재, 서구와 남의 것을 탐하는 열등문화를 키웠다. 스스로가 열등하니 남의 것이 부럽다. 그러니 무너지고 불 타버린 누각 하나를 몇백억원을 들여 새로 만들겠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과거를 향한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건물 하나 복원하고 자맥질하는 바위를 건져올리는 일보다 스스로 그 작업이 왜 중요한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를 깨는 일이 더 급하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지만 내일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나 오늘이 없는 내일은 상상할 수 없다. 태화강 상류가 바다와 맞닿은 시절부터 이땅에 사람이 살았고 그들의 흔적이 바위그림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 땅의 과거다. 그 과거의 물길이 흘러 태화강 언저리에 사람들이 모여살고 집단을 만들어 고대국가의 형태를 갖춰 나간 것은 바위그림이 인류사의 꼭짓점으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문화가 물길을 펼쳐 동해로 나가는 길목에 누각으로 꽃핀 것이 태화루다. 그 누각에 모여든 사람이 이 땅을 노래하고 그 노래가 메아리로 돌아 사람을 모이게 했다. 그 아득한 시절이 울산의 과거이자 오래된 역사다.
 

 오늘의 울산을 이야기 하면서 산업수도를 빼놓을 수 없다. 근대화의 메카라는 구호처럼 울산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선봉이 됐다. 공장의 검은 연기가 울산 하늘을 뒤덮고 바위그림을 삼키고 누각 터 위에 육중한 건물을 올리고 해안과 육지를 도륙하면서도 흐뭇해했던 것은 바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욕망 때문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위그림이나 누각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풍문으로 들리는 오래된 이야기는 뱃길 끊긴 태화강의 이쪽과 저쪽일 뿐, 다리를 놓고 노를 젓는 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문화적 욕구는 배가 채워져야 떠오르는 후식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문화를 찾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는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문제는 주린 배를 채운 뒤, 무지했기에 짓밟아 버린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데 있다.
 

 다행히 지금 울산은 문화의 옷을 갈아입는 데 열중이다. 물론 갈아입을 옷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느 옷이 몸에 맞는 것인지, 어떤 스타일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숱한 시도가 혼란으로 보일지라도 많은 작업 속에서 하나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중요한 일이다. 바로 그 작업 중의 하나가 어제와 오늘, 울산과 서울에서 이뤄졌다. 태화루가 다시 자리하는 날, 울산의 과거가 복원되고 역사와 문화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침략의 무리들이 태워버린 과거의 누각 하나가 오늘의 사람들에 의해 다시 우뚝해졌을 뿐이다. 그 누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비록 울산이 중심이 된 행사는 아니지만 암각화군 보존을 위한 국제학술세미나도 그렇다. 선사시대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인류사의 족적을 더듬는 증좌는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잘 보존해야 한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 지역을 살아 있는 울산의 과거이자 인류의 출발지로 되살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세계유산의 전문가들이나 관련분야의 석학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자리는 많을수록 좋다.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학자들이 반구대암각화를 더듬어 봐야 물속에 잠긴 바위그림이 빛을 볼 수 있다. 복원이나 보존이 그러하듯 가능한 세상의 이목을 끌 굿판을 벌여놓아야 단절된 과거로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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