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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한시간 거리, 가까운 장안사
애써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피곤함이 몰려왔던 날. 잠을 푹 잤는데도,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누구나 그런 날은 있으리라. 어쩌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시끌시끌' 잡음에 익숙해진 우리이기에 더욱 공감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행을 떠날 생각에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무거운 마음 떨쳐내려고 떠나는 여행. 날씨도 선선하니 좋겠다, 시작부터가 가벼우니 오늘은 그야말로 무엇이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 좋은 날'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도로 상황도 '맑음' 이었다. 장안사를 향해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약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목적지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행길에는 없어서는 안 될 내비게이션에서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하고 친절히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알려줬다.

   
▲ 장안사 전경. 계단을 오르면 문화재청지정 보물에 선정된 대웅전이 보인다.

 

 '명소'일수록 찾아가기 힘들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장안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이라 산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절을 상상했다. 같은 부산에 있는 '용궁사'처럼. 차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면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사찰. 상상은 상상대로,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는 것은 딱 맞아떨어졌다. 장안사는 한 쪽에는 시원한 계곡을 두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을 끼고 있는 '팔방미녀' 사찰이었다.

#넉넉한 웃음 보이는 불상에 미소짓게 되는 곳
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두고 찾아갔는데도, 관광객은 생각보다 얼마 없었다. 대신, 부처의 탄생기념과 함께 신도들의 소망을 담은 분홍빛 연등이 절 안을 가득 수놓고 있었다.
 그에 대한 믿음이 있든 없든,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담긴 연등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찰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등을 바라보며. '모든 이들의 소망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하고 조심스레 기도를 드렸다.
 

   
▲ '껄껄껄'하고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불상의 미소를 보고만 있어도 절로 복이 들어올 것만 같다.

 기자는 어렸을 적부터 수차례 절에 다녀왔지만, 그 안에서 기도를 드리고 절을 하는 것에는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절에 왔으니 공손히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어쩐지 어색해 손만 모으고 살짝 고개만 숙였다. 바로 옆에서 자연스레 절을 하는 한 어머니를 보고 있으니, 또 한 번 부끄러워진다. 다음에 절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제대로 한 번 절을 해봐야겠다.
 

 입구에 들어서면 아주 복스러운, 그러나 조금은 귀여운 매력을 가진 불상이 맞이한다.
 '껄껄껄'하고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불상의 미소를 보고만 있어도 절로 복이 들어올 것만 같다. 관광객들도 다들 그런 생각을 했는지, 불상의 복스러운 배와 귓불, 코 부위만 매끈매끈 윤이 났다. 복 받을 수 있을까라는 욕심에 기자도 그 세 부위를 모두 만져보며 불상의 인자한 미소를 따라 해 봤다.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곳이다.
 

 장안사에는 특이하게도 여심을 흔들 귀여운 불상들이 많다. 동자승을 표현한 자그만 목각인형에서부터,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불상,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부처님도 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불상과 부처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친근함. 그런 점에서 장안사는 누구든지 편히 다가갈 수 있는 서민의 절이라고 칭하고 싶다. 
 
#대웅전, 문화재청 지정 보물에 선정되기도
장안사 '대웅전'은 얼마 전 "국가의 보물로써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문화재청 지정 보물에 선정됐다. 주요 구조와 단청이 1657년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란다.
 현재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로 관리되고 있는 장안사 대웅전은 지난 2009년 부산대학교 현장조사를 통해 효종 8년(1657)에 설립된 이후 주요 구조부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진 탑.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창건해 '쌍계사'라 불려왔다고 한다. '쌍계사'는 학창시절 교과서 속에서 자주 봐왔는데, 그 쌍계사가 이 쌍계사가 아니란다. 잘 알려진 쌍계사는 하동의 쌍계사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쌍계사만 해도 3곳이 있다. 기장과 하동, 그리고 논산의 쌍계사가 그 곳이다. 이 사찰 모두 불교신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기장의 쌍계사는 애장왕(809) 이후 '장안사'로 고쳐 불리고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8년(1631) 의월대사와 인조 16년(1638) 태의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장안사에는 이밖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많다.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 명부전, 응진전, 장안사연 등 총 10개의 건축물이 시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장안사에서 꼭 가봐야할 대나무 숲
장안사를 방문했다면 지나쳐서는 안 될,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어쩌면 이 날, 장안사를 방문한 목적은 장안사가 아닌 장안사 대나무 숲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산에 대나무 숲이 장관이라는 곳이 있다던데?" 하고 검색을 해 본 결과, 찾은 곳이 이 곳 장안사였기에 안 가보고서야 이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빼곡히 늘어선 대나무 숲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시원함이 절로 느껴진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여름의 '초록'이 절정이기에 눈도 마음도 쾌청하게 만드는 곳이 이 곳이다.
 대나무 숲길은 그리 긴 거리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이 있기에 산책로는 금방 '뚝' 끊어지지 않는다. '조금 쉬고 싶다' 싶으면 대나무로 만든 벤치도 나온다. 곳곳에는 시원한 그늘도 함께 제공해 줄 정자도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여름의 '초록'이 절정이기에 눈도 마음도 쾌청하게 만드는 대나무숲.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숲길은 어디라도, 언제나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릴 적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토토로의 숲'을 걷고 있는 듯하다. 특히, 신록이 우거져있는 여름날에 걷는 숲길은 더 그렇다. 강렬한 햇살과 함께 숲 특유의 깊이가 함께 공존하기에 걷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순수한 자연과 하나가 될 것만 같다.
 

 장안사 대나무 숲은 초록 향연으로 너울거렸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디에선가 귀여운 이웃집 토토로가 등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쉬쉬식' 하고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뱀 한 마리가 눈치를 보며 지나간다. 동물원에서나 유리창너머로 볼 수 있었던 '뱀'을 자연 속에서 보니 참으로 영광이기도 하지만, 기자도 뱀과 함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대나무 숲 속에 '뱀'이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한가보다. 자연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뱀 조심, 뱀은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소원초에 소망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길
숲길을 돌아 절 안으로 다시 돌아오니,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이 있었는데, 대웅전 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연등 이외에도 소원을 들어줄 작은 '소원초'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 돼 있었다. 10cm 정도 길이의 초에 소원을 적고 꽂기만 하면 된다. 한 중간에 두고 소원을 빌고 싶었지만, 행여나 바람에 흔들려 불이 꺼질까봐 바람이 덜 가는 곳에 꽂고 조용히 소원을 읊었다.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절에 다녀간 방문객들의 간절한 기도를 마음에 담고 오늘을 산다면 이뤄질 수 있을 것도 같다.
 

 '여행'은 하루를 모두 쏟아 붓는다 해서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하루, 이틀, 1시간이라도 일상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라면, 여유에 사뿐히 정착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여행이다. 글.사진=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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