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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라 했다. 밖섬, 조라도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가 거느린 60여개 섬 중의 하나다. 본섬에서 불과 4km정도 떨어졌다. 그러나 날이 궂으면 갈 수 없고, 나올 수 없었던 섬의 운명은 가까워도 어찌할 수 없는 섬이 가진 한계였다. 다행히 바람 속에서 배는 떴다. 장승포에서 유람선을 탔다. 외도로 가는 길은 유람선이 유일하다. 배가 못 뜰 정도의 바다상태는 아니었지만 간간이 뿌리는 비와 해무로 인해 외도는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0분 남짓의 뱃길에서 내내 희뿌연 무채색의 여백만 가득했다.

   
외도의 길은 얽힌 듯 비켜간다. 1시간 30분 동안의 최적의 코스를 탐방하려면 부지런한 발품이 필요하지만, 산보하듯 천천히 걷다보면 물흐르듯이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30년 땀과 노력으로 일군

외도는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따뜻해 난대와 열대성 식물이 잘 자랐다. 조선시대부터 경사진 땅을 일궈 고구마를 키우고 고기잡이로 10여 가구 남짓의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한때 분교가 자리 할 만큼 제법 규모가 컸다. 
 
   
외도 갤러리.

 1969년 7월 서울에서 포목업을 하던 이창호씨가 낚시를 왔다가 외도에서 하룻밤 묵었다. 수 백 년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바위절벽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이었다. 그러나 아름드리 동백이 땔감으로 베어지는 안타까움의 현장이었다. 섬사람들에게 그저 밥을 짓는 연료일 뿐인 현실이었다.
 

 1969년부터 이창호씨 부부는 3년여에 걸쳐 섬을 매입했다. 부부는 농장을 꿈꾸며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를 심었지만 한파로 몇 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돼지 80여마리로 다시 시작했지만 이듬해 돼지파동으로 또 좌절을 맛봐야했다. 실패와 좌절은 또 다른 길로 안내했다. 부부는 상의 끝에 식물원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그 길은 상상이상의 어려움을 동반했다. 이씨는 서울 등 전국에서 직접 묘목을 사다 섬에다 심었다. 식물에 대한 공부와 열정의 시간은 자그만치 30년을 요구했다. 정성과 노력의 대가로 나무들은 자랐고 꽃은 만개했다. 1995년 4월 우여곡절 끝에 외도자연농원으로 개원했다. 
 

   
해발 84m 전망대에 서면 외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섬에 식물원을 만든다는 상상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던 부부는 서울 저명 교수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지중해풍 지붕을 가진 집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조각 작품이 세워지고 정원이 꾸며졌다. 그렇게 외도는 한해 200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3,000여종의 식물이 정갈한
외도는 하나같지만 동도와 서도로 나눠져 있다. 유람선이 닿는 곳은 서도다. 선착장에서 내려 정문을 통과하면 외도 표지석이 우람하다. 외도를 둘러보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정해진 코스는 없지만 섬의 곳곳을 둘러보는 길들을 중복없이 볼 수 있게끔 안내해놓았다. 
 

   
외도를 둘러보는 시작점이자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

 섬은 여전히 해무가 가득하다. 느리게 번져오는 섬의 속살 속에서 고요한 음악이 피어올랐다. 가곡과 아리아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안식처럼 자리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정성을 입어 가지런하고 군더기기가 없다, 하늘로 치솟은 코코야자나무가 키를 자랑하면 발밑엔 앙증맞은 꽃들이 눈높이를 낮추라한다. 꽃들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진초록의 강건함이 주는 조화가 알뜰하다.
 

 코카스가든을 지나 한 구비 올라서면 비너스가든이다. 중세풍의 석상과 잘 가꾸어진 정원은 예전 분교가 있던 자리다. 섬에서 가장 넓은 평지다. 그 안쪽에 겨울연가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는 집인 리스하우스다. 곳곳에 사진을 찍기 위한 돔형의 꽃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언제든 쉴 수 있는 벤치가 줄지어 있고 바닥엔 일일이 손으로 박아놓은 돌들이 앙증맞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주인의 마음가짐이 살갑게 느껴진다.
 

 야생화 줄지어선 공원을 지나면 전망대다. 날이 좋으면 해금강과 홍도가 발아래 펼쳐지고 저멀리 아스라이 대마도까지 보인다.
 이곳이 서도의 정점이자 4만3,000여평의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해발 84m 전망대에는 카페테라스가 있어 간단한 요기와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안개와 어울린 한 폭의 풍경화

2003년 태풍 매미가 덮쳤다. 외도는 그 길목에 위치했다. 30여년전 심은 편백들이 모조리 뽑혀나가고 섬은 망가졌다. 그러나 자연의 치유능력은 탁월했다.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새 식물이 뿌리를 내렸고 새들은 외도를 떠나지 않았다. 
 

   
명상의 언덕.

 전망대를 나오면 조각공원이 펼쳐진다. 문득 해무가 자욱해 지나온 길을 지웠고 가는 발목을 잡았다. 가끔 숲을 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들이 수묵의 풍경들을 일깨웠다. 그 너머에 예수 형상의 십자가가 고요하게 잠든 듯 서있다. 명상의 언덕이다. 그 옆으로 작은 교회당이 있어 실제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십자가 아래에는 너른 쉼터가 있어 자연스럽게 앉게 만든다. 발아래로 다도해가 펼쳐지고 동도가 가만히 모습을 드러낸다.
 

 서도에 만여평의 식물원을 만들고 3,000여종의 식물들과 편의시설들을 조성했지만, 동도는 기암절벽과 천연 동백림을 그대로 남겨뒀다. 깎아지른 듯한 해식절벽에 끊임없이 다가오는 파도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빛났다. 사람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수 만 년의 시간이 그곳에 존재했다.
 예전 원주민들이 고구마를 심던 다랭이밭에 심었던 편백나무가 자라 천국의 계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태풍 매미로 다른 수종으로 교체됐지만 층층이 자라난 나무들의 식생은 건강했다. 잘 가꾸어진 계단을 따라 보이지 않는 숲 저편의 새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코코야자나무 뒤로 보이는 천국의 계단.

 1시간여의 황홀한 산책에서 마지막 발길을 잡는 것은 이창호씨 부부의 땀과 노력이 기록으로 남은 갤러리다. 처음 외도의 모습부터 현재까지 시간들이 경이롭다. 열정과 정성으로 가꾼 흔적들이 사각의 프레임 속에서 가지런하다.
 돌아오는 길. 유람선에서 되돌아본 외도는 가물가물 안개 속으로 또 숨어든다. 외로움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안개 속에 완전히 지워진 외도의 바다엔 또 여백만 가득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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