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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숲에 가 보면 안다.
나무들이 온종일 빈둥거린다.
빈둥빈둥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논다.
일없는 나룻배처럼
빈둥빈둥 빈둥거린다.
바람 부는 날에는
새들도 바람을 타며 하늘 모퉁이를
빈둥거리며 논다.

-그렇게 놀아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아무도 그런 말 안 한다.


■ 감상노트
빈둥빈둥빈둥 놀고 싶은 날입니다. 매일 매순간이 그러합니다.
오늘은 남구 선암동에 있는 호수공원을 산책했습니다. 빈둥빈둥빈둥……거리는 사람들이 호숫가 둘레 길을 꽉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달빛을 품에 안은 호수가 빈둥빈둥빈둥, 호숫가 둘레길을 빙빙 둘러싸고 있는 개나리와 벚나무들도 빈둥빈둥빈둥, 허리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도 빈둥빈둥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색소폰 선율에 흔들리는 발걸음도 빈둥빈둥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담보 잡힌 우리 아이들만은 예외입니다. 늦은 밤까지 딱딱한 나무의자에 엉덩이 붙인 채 졸린 눈을 부비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이 자유롭고 즐거운 동시 한 편 낭송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 숲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성환희 시인(울산 작가회의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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