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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지키면서도 주변 여건을 두루 살피는 세심함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애란'과 '세정'은 비슷합니다. 비료가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자라지 못하는게 난입니다. 물기가 많아도, 적어도 안되며 햇빛이 강해도 약해도 어렵습니다. 너무 습해도 너무 건조해도 죽습니다. 배양토는 흙도 아니고 돌도 아닌 작은 알갱이를 씁니다. 난을 기르는 것 모두가 중용인 셈이죠. 중용의 도를 필요로 하는 조세 업무에 도움이 크게 되는 만큼, 애란은 제게 단순한 취미생활이라고할 수 없습니다"


   
▲ '애란인'으로 꼬박 27년을 살아온 정계조 울산세무서장이 2년전 한국춘란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지침서 '한국춘란-품종과 배양'을 보이며 '난의 미학''난문화의 대중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원칙 지키면서 주변 여건 배려
'애란'과'세정' 비슷한점 많아
'중용의 도' 조세 업무 큰 도움
 

# 부산난연합회 이사장직 맡으면 4년간 시민 무료 강좌
난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정계조 울산세무서장(56). 지난해 12월 울산세무서에 부임한 정계조 서장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0년 7월 사무관으로 승진한 후 부산국세청 조사2국 조사1과장, 세원분석국 신고관리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 10월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그는 납세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난을 키우면서 배우게 됐단다. 그래서 서장이란 직함보다는 애란인으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정 서장이 난초에 입문한 것은 1985년 울산세무서에서 근무하면서 부터다. 진주고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세무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울주군 반구대암각화 일원에 나들이 간 길에 난초를 만나면서 27년 동안 애란인으로 지내고 있다.
 난에 입문한 뒤 한풀난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았고, 2006년에는 국제동양란교류협회를 만들어 국제동양난 명품대회의 초석을 닦기도 했다. 그리고 관음 아사달 소금강 대동보 색동 등 한국춘란 20개 품종을 개발해 한국춘란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난연합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2009년부터 4년째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난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 30년 역사 집대성 '한국춘란 총서' 출간
정 서장은 난 입문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30년 역사의 한국 춘란에 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지침서 '한국 춘란-품종과 배양'을 2년전 발간한 것도 한국춘란의 아름다움은 물론 품종 보존 및 정립을 위한 차원이었단다.
 "그동안 축적된 한국춘란을 체계화하고 배양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정리한 것이다. 난 애호가는 물론 입문자도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지침서로 활용됐으면 하는 뜻에서 펴냈다. 일본은 우리보다 수십년 일찍 난문화를육성하고 원예화했으나 난 대중화에는 실패해다. 왜냐, 관련 지식을 공유하지 않고 더불어 하는 문화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난을 배양하면서 즐길 수 있는 바탕이 되길 바란다. 한국춘란 문화 대중화의 기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서장의 책은 애란인 사이에서 '한국춘란 기본서'로 통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정 서장이 정의한 한국춘란이란, 관상성이 높아 원예적으로 분류할수 있는 난을 말한다. 국내 산과 들 등 자연에 산재한 보춘화 중에서 관상성이 뛰어난 난들을 한국춘란이라 부른다.
 정 서장은 "한국 춘란을 채집하고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 전이지만 많은 애란인들의 노력으로 우수 품종이 개발되고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그동안 한국 춘란이 일부 난 취미인들에 의해 개발되고 배양됐다면 앞으로는 일반인들도 쉽게 기르고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 춘란 문화상품화 '앞장'
같은 맥락에서 정 서장은 한국춘란의 문화상품화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정 서장은 "많은 애란인의 노력으로 300만원을 호가하던 품종이 최근에는 50만원까지 값이 떨어졌으나 일반인이 쉽게 구입하고 선물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10만원대 이하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기념이나 축하를 위해 선물로 보내는 난은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 대만에서 개발된 종의 난들이다. 이를 한국춘란으로 대체되도록 하는 것이 애란인으로서 소망이자 임무라고 정 서장은 전했다. 
 "잎의 색깔, 특히 잎 위 무늬의 대비나 자태를 따지면 중국이나 일본의 것보다 한국춘란이 훨씬 우수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한국춘란을 오히려 많이 가져갑니다. 한국춘란이 중국이나 일본 것에 비해 단아하면서 청초한 자태가 빼어나거든요."
 아파트 생활하는 누구나 쉽게 한국 춘란을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하는 것도 정 서장의 희망사항이다.
 "베란다가 천혜의 온실이라는 점에서 아파트는 난을 키우는 조건으로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지금 당장 집 베란다에 화초 대신 난을 길러보세요. 화사하게 피어난 난 꽃은 약간의 수고로움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난과 가까이 하면 후회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 시간·정성이 빚어낸  아름다움
그렇다면 난과 가까이 하면 어떤 점이 좋은 걸까. 정 서장이 밝힌 '난의 미학'은 이렇다.
 난은 예(藝)를 알게 한단다. 난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예라는 것. 난이 지닌 엽선의 흐름이 선의 미와 일맥상통하므로 난 그 자체가 미술품이 되기 때문이다.
 나을 통해 자족을 깨닫는단다. 대부분의 식물이 햇빛과 수분, 영양이 있으면 욕심껏 자라지만 난은 알맞게 자라며 잎장수와 길이를 적당한 때에 멈춘다. 난 처럼 스스로 족함을 안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음이요,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난은 정 서장에게 기다림을 가르쳐 줬다.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아름다움은 기다림의 결과물이기에 그렇다.
 또 정 이사장은 난에서 좋은 기가 나와 몸과 마음을 맑고 올곧게 해 준다고 했다. 그러니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참 난인의 길에 이르도록 노력하지 않을 길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난을 기르는 건 취미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정 서장.  난이 피우는 아름다운 꽃은 생활이 그에게 주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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