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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또다시 파업 회오리 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11일 실시된 파업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열 명 중 일곱 명이 파업쪽에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현대차노조는 오늘 오후 예정된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그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3년 연속 무분규라는 공든탑을 스스로 허물어버리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열 명 중 일곱 명이 파업을 택했다면 '압도적'이라는 말을 써도 과히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세 명에 대해 "당신들은 틀렸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소수의 생각이 세상의 흐름을 뒤바꾼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자기가 창업했던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던 스티브 잡스, 병법의 상식을 뒤집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작전을 쓴 한신 등은 역사의 한 획을 바꾼 사람들이다.
 

   일개 기업 노조의 투표 결과를 두고 호들갑을 떨 필요야 없겠지만,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옳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다수를 등에 업은 또 따른 독재"라는 말처럼 숫자가 반드시 진실과 정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서도 말했듯이 이번 현대차지부의 파업찬반 투표는 여느 때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점친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기일 보다는 남의 일정에 맞추기 위한 수순 밟기가 농후했기 때문이다. 즉 금속노조가 벌써부터 오늘(13일)과 20일 정치파업을 예고하고, 이를 위해 산하 노조가 협조해 줄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그리고 금속노조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차지부는 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지난 달 28일 돌연 '협상결렬'을 선언하면서 일사천리로 파업을 향해 치달았다.
 

 "이번 투표는 종전과 달리 찬성이 나와도 상당히 낮을 것이다"는 전망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재적대비 71%라는 비교적 높은 찬성률이 나타났다. 집행부로서는 성공한 작전이었다. 울산시민 단체가 "파업은 안 된다"며 노사교섭을 간곡히 부탁하고, 회사도 교섭재개 요청 공문을 두 차례나 보냈다.
 

   게다가 사측 대표가 직접 노동조합을 방문해 "빨리 협상을 다시 하자.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호소했다. 심지어 "무분규의 선물인 회사주식이 날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설명도 했다. 무엇을 줄 사람이 상대방에게 받을 명분을 스스로 차버리지 말라는 부탁을 했으니 아이러니도 보통 아이러니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지부 조합원 과반수 이상이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을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마음은 모른다"고 했으니 그 누구도 단언은 할 수는 없다. 아마 '그래도 믿을 곳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고, '설마 노조가 우리에게 손해를 주겠냐?'는 노조지상주의도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로 하는 바람에 조합원이 반발을 하여 재투표를 하는 등 미심쩍은 투개표 과정도 이번 개표결과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기 어렵다. 또 집행부가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재적대비 대신 투표자 대비 찬성률을 발표한 것은 자신감 부족에 따른 부풀리기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다.
 

 하긴 조합원은 노조를 믿고 지지해야 한다. 허나 그 믿음이 반드시 옳거나 혹은 그 믿음에 대해 100% 보답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만 봐도 그렇다. 결과는 참담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숱한 가정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바람을 잡던 정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 앞길을 가기에만 바쁘다. 그냥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노조의 대척점에는 회사가 있다. 급여를 지급하고, 성과급을 주고, 각종 복지혜택을 주는 것은 결국 회사다. 오늘날 현대차 직원들이 어깨와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회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근로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은 사측의 경영전략을 비롯한 여러 노력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파업은 회사를 괴롭혀 소기의 목적을 거두겠다는 노조의 최후 전략이다. 허나 일찍이 손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다"고 했다. 파업은 노사가 함께 피 흘리는 것이다. 일방적인 손해와 이익은 없다. 둘 다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조합원이 모를 리 없는데도 파업찬성을 택한 현대차 근로자의 마음은 참 헤아리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파업 찬반투표는 곧 가결이라는 등식이 고정관념으로 자리했다고도 이야기 한다. 노조는 일단 주말특근은 예정대로 하고, 20일 파업은 16일에 있을 쟁의대책위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집행부도 부담이 된다는 뜻일 게다. 부담이 수단이 아닌 목적을 향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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