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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추남 선생이 병영은장도의 특징인 오동상감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가유공자 연금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만 내가 지금 그만두면 울산에서 은장도를 제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지게 되니까, 그래서 이렇게 은장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든이 넘은 장추남(83·은장도(銀粧刀) 제작 기능보유자) 선생이 아직도 은장도를 만들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함께 은장도를 만들어왔던 이들이 더 이상 은장도를 만들 수 없게 된 데다 새로운 전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은장도를 만들어왔던 시 무형무화재 1호 故임원장 장도장의 아들인 임동훈 장도장이 얼마전 사고를 당해 은장도를 만들 수 없게 된데다 故허 균 선생의 아들인 허 명 씨 역시 사정으로 더 이상 은장도를 만들 수 없게 되면서 병영은장도는 그 맥이 끊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열다섯에 울산 정착 열일곱부터 만들어
오동상감기법 사용 병영은장도 '특품'
80년대만 해도 남녀 모두 사용 '인기'
현재 찾는 이 줄어 소일거리 만족 불과

#도신 만들고 두드려 늘리는 등 복잡한 작업 필요
장추남 선생은 열일곱부터 울산에서 은장도를 만들어온 이다. 일본 나고야가 고향인 그는 열다섯에 할아버지의 고향이던 병영에 이사를 오면서 이곳에 정착했다. 처음엔 당시 인기가 많았던 담뱃대, 목장도를 만들었지만 은 가격이 싸지자 은장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구 전통공예관에서 어렵게 그를 만난 날 그는 은장도 작업 과정을 상세히 일러줬다. 은장도를 만드려면 우선 불을 때워 도신을 만들고 은을 두드려 늘리는 등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장 선생을 비롯해 울산 장도장들이 만든 병영은장도의 특징은 타 지역에선 사용되지 않았던 오동상감기법에 있다. 장 씨는 "최근에는 광주 등 타 지역에서도 오동상감기법을 쓰게 됐지만 과거엔 병영에서만 쓰던 최고급 기술"이라며 "예로부터 상감기법을 이용한 병영은장도를 최고의 은장도로 평가해 진상품으로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목장도·골장도·뿔장도 등 다양하게 만들어

   
 
상감기법이 사용되는 곳은 칼집과 칼자루를 이어주는 장식인 두겁 부분. 금과 구리의 합금으로 만든 오동판에 다양한 모양을 음각하고 여기에 은을 녹여 넣는다. 이어 이 부분을 한지로 감싸고 삭힌 오줌을 묻히면 장식 부분이 까맣게 변해 아름다운 장식이 만들어진다. 병영은장도는 타 지방과 달리 날카로운 칼 부위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담금질할 때 황토를 섞은 찬물에 급랭시키는 과정도 거쳤다.
 장 씨가 만드는 칼은 은장도 외에 어렸을 때부터 만들던 감나무, 향나무, 대추나무가 재료인 목장도, 골(骨)장도, 뿔장도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고래 울산을 알리기 위해 고래문양을 이용한 은장도를 만들기도 했다. 올해 울산시 공예품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저자도' 역시 그의 개성을 담은 작품.

#혼수품 이용에 은행·경찰서 등 기관에서도 구입
지금은 수요가 많이 떨어졌지만 80년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은장도를 찾았단다. 한 지아비를 잘 섬기라는 뜻으로 여성들의 혼수품으로 이용됐을 뿐 아니라 충, 효, 의의 의미를 담은 남성용 은장도까지 다양했다. 특히 은행, 군청, 경찰서 등 기관에서 많이 구입해갔다. 장 씨는 "당시 함께 은장도를 만들던 허 균은 참 특이한 친구였는데 언젠가 경찰서장이 사복을 입고 와서 은장도 좀 사겠다고 했을 때 정복을 입고 오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은장도와 장도장의 권위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장 선생은 1990년 제15회 전국 전순 공예대전에 입상한 뒤 그의 은장도가 경복궁 전시관과 인사동 등지에 전시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그의 물건을 주문해 재미를 봤다. 이 때가 그의 은장도 인생의 황금기였다. 이후 경남공예품경진대회, 대한민국공예품 대전, 국제미술대전, 울산시공예품대전 등에서 입상하며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소일거리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은장도를 찾는 이들이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이 일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힘은 들지만 앞으로 은장도 전수생이 나타날 때까지 은장도를 만들 것이라는 장추남 선생. 그의 바람이 이뤄져 수백년간 이어져온 병영은장도의 맥을 잇고 여기서 더 발전한 새로운 은장도의 부활을 꿈꿔본다.  김주영기자 uskjy@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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