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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일이다. 여야 모두가 대선을 앞두고 경선레이스를 펼치고 있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이유야 많다. 고만고만한 인사들이 대권욕을 안주머니에 숨기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외치니 정작 국민은 등을 돌린다. 지루한 룰 싸움으로 경선 시작부터 집안싸움을 하는 꼴은 여야 모두가 원죄를 안고 있다. 그러니 핑계를 안철수로 돌린다. 링 밖에서 잊을 만하면 링 안에 침을 뱉으니 관객이 모일 리 없다는 변명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바로 '경선 룰' 전쟁이다. 선수가 룰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식상하지만 원칙주의자의 고집대로 정리됐다. 문재인과 '반문제인사'들이 마지막까지 룰을 두고 벌인 줄다리기도 문재인의 통 큰 양보로 일단락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보여주지 말아야 할 속내를 유권자들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욕망이다. 욕망은 긍정의 파도를 타면 세상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욕망은 하수구다. 컴컴한 냄새가 진동하고 이기와 아집이 똬리를 튼 지하의 세계다.
 

 그 욕망을 잠시 꺼냈다가 화들짝 감춘 채 시작한 경선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여야 모두 경선 돌입과 함께 흥행의 돌풍이 불기를 기대했지만 100년만의 폭염에 염천 뙤약볕으로 범벅이 된 유권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딱한 일이다.
 아뿔싸, 절대강자인 박근혜 캠프도 비상이다. 안철수 원장이 재를 뿌리듯 책을 내놓으며 경선 레이스의 채널을 돌렸다. 며칠 전부터는 각종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상승세가 감지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자 새누리당에서는 얻는 게 없다는 '경선 회의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내가 안철수의 파트너'라며 짝짓기 적임자를 고르는 이상한 레이스로 변질되고 있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경선레이스에서 새누리당의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말이 좀 심하지만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는' 후보들이 '내가 제일 잘났다'고 외치니 코미디 수준으로 전락했고 한 술 더해 강력한 자당의 대권후보 공격에 열을 올린다. 미리 맞을 건 다 얻어맞아 놔야 본선에서 편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근거로 사실관계조차 모호한 악성 루머까지 흘리는 경선이다 보니 후보 간 검증은 없고 비방만 부각되는 꼴이다.
 

 야당의 사정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정권은 잡고 싶고 인물은 없으니 좌충우돌 소리부터 요란하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검찰이 '형님'을 잡아간 뒤 성역 없는 수사를 목청껏 외치던 지도부는 박지원딜레머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오히려 검찰을 향해 표적수사 물타기 수사라며 연일 성명을 내다 느닷없이 스스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쇼까지 펼쳐 보인다. 일단 관심 끌기 면에서는 고단수다. 쇼와 이벤트의 대가들이 모여 있으니 정치판의 터닝 포인트를 찾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점은 인정할 일이다.
 문제는 이번 레이스를 통해 야권 특유의 바람몰이로 박근혜 측과의 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이벤트에 식상한 유권자들은 보다 자극적인 것이거나 완전히 조용한 것을 원한다. 그런 판에 피에로 분장으로 요리조리 춤을 춰 대니 유력한 대권 후보 문재인 측의 지지율조차 오히려 하락하는 비극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쯤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후보도 나왔다. 이참에 우리는 어차피 안철수와 후보단일화를 위한 예선주자라고 속내를 드러내며 스스로 '마이너리그'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본질은 실종되고 인테리어만 요란한 경선의 속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선 정국의 초점은 점점 안철수의 등판으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하기야 본격적인 경선레이스에 맞춰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야릇한 책 한 권을 툭 던진 안철수는 이미 등판을 한 셈이다. 나오기 전부터 수군대다가 나오자 불티가 난 안철수의 생각은 이제 동네서점까지 파고들었다. 책 읽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서점에 모여들 정도니 경선이랍시고 판을 벌인 여야 정치권은 헛물만 켜는 모양새가 됐다.
 

 분위기가 여기까지 변해버린 상황이라면 이제 대권에 나선 인사들은 안주머니에 감춘 권력을 향한 욕망을 꺼낼 때가 됐다. 판을 바꾸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면 숨어 있다 핏기마저 사라진 그 욕망을 햇살에 말려 제대로 세상과 마주서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욕망이 어디까지이고 국민에 대한 애정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 어디까지 남아 있는지 제대로 살필 수 있다. 잘 말린 욕망을 펼쳐보며 어쩌다 이 모양으로 경선레이스가 주저앉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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