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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우리 사회는 막말이 넘쳐흐른다. 애써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그년이든 그놈이든 욕설과 막말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다. 인터넷과 SNS에는 한국어로 표현 할 수 있는 풀 버전의 욕지거리가 넘쳐나고 공중파와 케이블은 새로운 욕과 막말을 창조하고 리모델링 한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그년'이 도마에 올랐다. '그놈'과 '그년'을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인사들이 머쓱해졌다. 변명이 가관이다. 오타란다. 그녀는 예뻤다라고 쳐야할 대목에 그년은 예뻤다가 조합됐으니 손가락을 탓해야지 인격으로 시선을 돌리면 곤란하다고 뒤통수를 긁는다. 그 정도라면 욕에 관대한 사회다보니 시간 속에 묻힐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방송에 나선 막말의 주인공이 안색을 바꿨다. 진심일 수도 있단다. 자신의 속내에 그녀는 그년으로 각인돼 있는 것 같다는 고백까지 한 판이다.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해보자는 기세다. 본색을 폭로하겠단다. 그가 지칭한 '그년'의 본색을 말이다.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이다. 그가 상대당의 대권 후보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그년'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그년'이란 표현을 '그녀는'이라고 정정해 트위터에 올렸다. 그리고 입을 다물면 좋았을 텐데 한 라디오에 출연해 근질거리는 입을 또 열었다. 그는 방송에서 "실수를 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었던 심정이 제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 본심을 비쳤다. 본심이 그랬으면 화장실에서 웅얼거리면 된다. 뒤를 닦고 침을 뱉으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법으로 뇌까리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수시로 화장실에 가도 누가 뭐라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종걸 의원은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그가 뱉어낸 '그년'이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든 오타에 의한 실수든 트위터에 올린 그 순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부분이 그가 놓친 지점이다.
 그럴 수 있다. 오타를 빙자해 본심을 슬쩍 드러내고 싶은 치졸한 본능은 아무리 넥타이를 매고 자세를 고쳐 잡아도 꿈틀거릴 수 있다. 슬쩍 흘렸다면 아이쿠, 실수라며 머리 조아리고 거둬들이면 끝난다. 통 큰 정치인들이 자판이 겹쳐진 실수를 물고 늘어지진 않는다. 순간,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근혜의 저격수로, 윗대 어른들이 일제에 맞서 목숨을 담보하듯 스스로 정권교체의 선봉에 서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막말은 아니다. 욕을 일상화하고 막말을 후렴으로 삼는 사회는 오히려 욕과 막말에 관대하지 않다. 내가 하면 시니컬한 사회풍자고 남이 하면 저질 막장이라는 이율배반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곳이 우리 사회다. 문제는 그 지점이 아니라 '그년'이 향한 곳이다.

 이종걸 의원은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총선 때 막말로 숯불구이가 된 김용민과 김용민을 응원하다 무명시절 라디오방송이 도마에 오른 김구라 이야기 말이다. 김용민이 노인 폄훼 발언을 할 때 인터넷 방송의 진행자는 김구라였다. 김용민은 그 때 입으로 한가락 했다. 이들은 인터넷방송에서 짝을 이뤄 여성, 노인, 종교 비하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들은 방송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을 '노가다 십장'이나 '멸치대가리'라고 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들'로 지칭했다.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그 때 그들은 몰랐다. 배설처럼 쏟아낸 말이 적도까지 숨어들어 몇 년 후 A급 태풍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후리칠 거라고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이종걸 의원은 두려운지 모른다. '그년'이라 뱉은 그가 이 나라의 대권을 잡는 현실이 죽기보다 싫을 수도 있다. 온갖 이벤트에도 야권의 대선 경선바람은 노풍 때처럼 회오리로 변할 기색이 없으니 답답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단순하게 싫은 것이 아니라 이러다간 안철수와의 연대도 어려워지고 박근혜가 홀로 나아가 정권교체는 물 건너가는 일이 아닌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지던 좌파정권 10년을 짜증으로 바라보던 보수골통들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래도 '그년'은 방향이 아니다. '그년'이 향한 지점에 여성이 있다. 유권자의 절반이 넘고 뭉치면 판을 엎어버릴 거대한 감성의 세력이 그가 뱉어 버린 '그년'의 배경에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그년'과 여성은 다르고 '그년'은 여성과 무관하다고 외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뿔싸, '그년'을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그년'을 구분 지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자꾸만 발가벗김을 당하게 된다. 어쩌랴, 스스로 뱉은 말이니 스스로 감당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종걸 의원에게 '그년'은 그의 정치 인생을 구분짓는 분기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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