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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와 강가 강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힌두에게 있어 더러운 육체와 오염된 정신을 정화하는데 으뜸인 강가 강을 따라 늘어선 가트만 해도 84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가트엔 1년 연중 수도승, 관광객 등의 사람들로 붐빈다.

'실타래를 풀어보자'.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으로, '욕심'이라는 것은 알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을 풀어내고 싶었다. 떠오르는 경제대국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게 쓰레기로 점령된 거리, 눈만 돌리면 쉽사리 볼 수 있는 거지, 선인은 없고 "Korean, Korean? 우리 가게 와요!" 하고 귀찮게 따라붙는 장사꾼, 저기 도로 한가운데 퍼질러 자는 개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인도는 얽힌 실타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첫째,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기. 둘째, 나라를 빚어낸 요소 중 경제·힌두교 두 가지만 생각하기.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나라를 경험할 최고의 선택임에 틀림없었다.
 인도를 느끼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세워졌을 무렵 도착한 곳은 바라나시(Varanasi). 이른 아침 갠지스강을 따라 모여든 사람들이 목욕하는 이미지로 잘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힌두교 성지로서 지금 현재는 최고의 관광지가 된,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곳.


#흥정이 주는 쏠쏠한 재미

바라나시역을 나서자마자 릭샤꾼들이 모여든다. 그 뒤로는 사이클 릭샤, 오토 릭샤가 즐비하다. 인력거(사이클 릭샤)와 택시(오토 릭샤)를 생각하면 되겠는데,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데 있어 이용하게 될 이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이다. 그리고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어디 가려고 하느냐 등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이들 릭샤 왈라는 어느 지역에 도착하든 가장 먼저 맞닥뜨릴 상대이다.
 정해진 가격이 없는 거래에서 사이클 릭샤꾼과 한바탕 밀고 당기기가 펼쳐졌다. "3명에 100루피"라고 제시하기에 "60루피"를 요구한 것. 1,000원 내느냐 2,000원 내느냐를 두고 흥정한다고 보면 되는데, 자국민에겐 넉넉잡아 20루피가 채 안 될 요금으로 이미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 상황. 그렇기에 우리 기준으로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곧이곧대로 응하면 안 된다.
 다른 이를 찾을 것처럼 '쿨'하게 돌아선다. 5~15초 정도 걷다보니 "오케이, 80루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걸으니 저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오케이, 70루피" 하고 말한다. 버티기를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가격이 내려가는데 주위를 둘러싼 다른 이가 "50루피"라고 말할지 모를 일. 며칠만 있다 보면 알게 될 흥정 방법으로, 또 한편으론 깎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통질서의 부재, 도로 위의 '카오스'
가격을 맞춘 후 릭샤에 올라타니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각자 저마다 이동하는 사람들.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니 싱긋 웃음을 건네는 이도 있다. 길가에 누워 있는 거지도 심심찮게 있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며 구걸하는 아이들도 있다.

   
차선 따위 없는 도로에서 차고 릭샤고 사람이고 동물이고 부딪힐 듯 부딪히지 않음에 이방인의 입은 벌어진다. 다행(?)인 것은 인도인들은 설사 부딪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한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이곳 바라나시의 건물 또한 대부분 우중충하고 낡았다. 거리 곳곳마다 쓰레기가 널려 있으며, 소와 개 등 동물이 도로 한 가운데를 점령하기도 한다. '달리는 코끼리' 등 지나가는 이야기로라도 들어본 바 있던 인도 경제의 눈부신 발전상과 달리, 눈으로 받아들인 모습으로만 보자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치를 통해 이야기하자면, 인도는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9%에 불과하던 1991년과 달리,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7%대 성장을 제외하면 2006년 이후 5년간 연평균 9% 가까운 고공 성장을 이어왔다. 외환보유고는 2012년 현재 2,900억 달러로 1991년 20억 달러에 비해 145배 늘어났으며, 외국의 대인도 투자액 또한 1991년에는 5억 달러가 채 안 됐으나 2011년에는 365억 달러의 직접 투자 유치가 이뤄졌다.
 

 그러고 보니 기억해야 할 게 있다. 국토 크기가 우리나라의 33.3배이고 인구는 약 22배라는 점이다. 20여년 시장경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선진국 버금가는 변화를 기대했다는 건 말 그대로 난센스였는지 모르겠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 차선 따위 없는 도로에서 차고 릭샤고 사람이고 동물이고 부딪힐 듯 부딪히지 않음에 입이 벌어진다. 급제동·급정거를 밥 먹듯 하는 자동차에 이리저리 끼어드는 릭샤, 아무렇게나 횡단하는 사람들…. 경적 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집어넣을 거라고 울리고, 넣지 말라고 울리고, 빨리 가라고 울리고…. 그렇게 먹먹해진 귀를 부여잡고 갠지스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마저 "money, money"
강가(Ganga). 우리에겐 갠지스(ganges)로 잘 알려진 곳으로 한낮에 당도해서인지 한산하다. 강가 강 서쪽 편을 따라 늘어선 가트(Ghat)가 저기 멀리까지 펼쳐지는데 그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리 식으로 '계단식 제방'이라 표현 가능한 가트만 해도 84개. 가트에서 내려다본 강가 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지만 몬순기(6~9월 우기)에는 강의 물이 불어나 이들 가트가 잠겨버리기도 한단다.

   
강가 강에서 만난 아이들. "photo, photo" 하고 말하자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후 돈을 달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을 수도 있다.

 알게 모르게 차분해진 마음. 나름 감성에 젖어 가트를 걷는데 강물을 보는 순간, 놀라버리고 말았다. 수질로 얘기하자면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기에. 쓰레기는 물론이요, 이름 모를 수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까지 떠다니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몸을 담그면 온 몸이 타들어갈 듯한 강 저쪽 편에 팬티만 입은 아이들이 놀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비누칠한 몸을 씻는 어르신에 빨래를 하고 있는 이들까지…. 펼쳐진 장면을 받아들이고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바쁘기만 하다.
 "photo, photo" 하고 말하자 자세를 취하는 아이들.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의 어깨에 올라선 후 역방향으로 다이빙하기도 한다. 입 안 가득한 물을 내뿜으며 한번 더 자세를 취하겠다고 하니 또다시 찰칵.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일어서는 순간, 또 한번 놀라버렸다.
 이제껏 웃던 표정은 사라지고 "money, money" 하고 돈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 이곳 인도에 와서 들을 만큼 들은 돈 얘기를 이곳에서도 들을 줄이야.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로 몸을 씻어 죄악을 벗겨낸다 했는데, 그 성스럽지 못함에 놀라버렸다.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나라
적확한 표현을 찾기 어려우나 분명 이 나라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요소가 한데 어울려 있음에 열탕과 냉탕을 왔다갔다 하기도 여러 차례. 저기 생과 사가 혼재된 화장터,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는 그 극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연기. 3~4구의 주검은 그렇게 타들어가고 있다. 주위를 둘러싼 많은 이들과 섞인 채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 화장터에서 일하는 카스트는 타지 못한 다리 부분을 태우기 위해 막대기로 짓이긴 후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는다. 형체는 그 모습을 잃고 또다시 타들어간다.
 

   
개 한마리가 도로 한가운데서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인도 그리고 인도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힌두교(Hinduism)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사라(sansara), 즉 윤회가 계속된다고 믿는 힌두(Hindu, 힌두교 신자)에게 있어 목샤(moksha), 즉 해탈은 인간이 목표로 하는 최고의 가치를 의미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계로부터의 정신적 해방이요, 육체적으로는 영겁의 까르마(karma), 즉 업(業)으로부터의 해방인 게다.
 성수와도 같은 강가 강의 물은 더러운 육체와 오염된 정신을 정화하는데 있어 으뜸이요, 심신의 정화는 곧 해탈에 이르는 길. 그렇기에 모두들 이곳에 모여들어 놀기도, 씻기도 또 저렇게 한줌의 재가 되어 안기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품'으로 말이다.
 

 소와 염소는 주검과 함께 타버린 나무더미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뭐 그렇게 먹을 게 있는지 연신 우적거리는 소. 사람들 사이에 있던 개는 열기가 느껴졌는지, 그게 아니면 누군가 단잠을 깨웠는지 몸뚱아리를 일으켜 자리를 옮긴다. "깍, 깍"거리는 소리에 위를 보니 까마귀 떼는 하늘을 이리저리 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 동물 할 거 없이 모든 게 그냥 그렇게 한데 섞였다.
 

#상인은 상인대로, 거지는 거지대로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들

돈벌이를 위해 수작 부리는 이들은 여전하다. 구걸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상기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나라를 빚어낸 요소 중 경제·힌두교로만 생각해보기. 그렇게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헤치려 한다.
 힌두교에서 개인의 카스트는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내세의 카스트는 현세에 부여된 다르마(dharma), 쉽게 말해 사회적 의무를 어떻게 준수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고 보면 질릴 대로 들은 돈 얘기지만 상인은 상인대로, 거지는 거지대로 지금 현재 충실히 사는 것 그뿐이었다. 더 나은 계급으로 태어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해탈하기 위해 말이다.
 

   
경계하지 않고 자세를 취해준 천진난만한 아이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기 또한 사람 사는 곳이라고. 신비한 기운이 감돌던 나라도 알고 보니 사람 사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떠오르는 경제대국, 또 한편으로는 우중충하고 낡은 건물 가득한 나라. 흥정을 할 때는 느긋한 모습이더니 운전할 때는 그렇게 성급할 수가 없는 사람들.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울린 나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나라…. 그래서일까, 꽤나 매력적인 나라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한다. 지금 여기는 인도라고. 글·사진=류민기기자 fbalsrl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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