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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이 막바지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서울대 학위수여식에 등장한 안철수 원장은 전에 없이 밝은 표정으로 보도진에게 자신의 명함을 돌렸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곧 모든 내용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마치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뒤통수를 긁적이며 한마디 하는 모양새다. "야,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야" 오래된 변명이자 시간을 어겼을 때 쉽게 사용하는 유용한 한마디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자와 주인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바람이 마주치는 자리에 대권의 의자가 기다린다. 다만,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자리의 주인은 기다리는 자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혼란의 시대는 이를 잠재울 어떤 존재를 원한다. 이른바 민중의 기대치다. 통일신라의 끝자락, 도인 도참의 수제자 도선의 예언이 민중의 입에 오르내릴 때, 서해 용왕의 딸과 혼인한 왕씨 가문의 사내가 아들을 낳았다. 그가 장성해 신라의 무능을 질책할 때 민중은 길을 비켰다. 원의 지배하에 패륜과 향락에 도취된 왕씨 일가가 나라의 안위보다 일신의 영욕을 쫓자 무학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던 민중은 이성계를 맞았다. 변화의 바람은 현재의 불안이 에너지가 된다.
 

 조선말, 삼정의 문란과 권력의 타락이 비린내를 풍길 때 민중은 다시 '그분'을 기다렸다. 정도령이다. 이번에는 보다 확실한 기록물인 정감록을 근거로 민중은 정도령을 찾았다. 정감록은 조선 후기부터 유행한 예언서다. 조선왕조가 곧 망하니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고, 정도령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지배층에겐 정감록이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겠지만 민중들에겐 위로와 희망의 복음으로 비공식 베스트셀러였다.
 

 정감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 15년(1739년) 8월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 보다 앞서 숱한 예언서들이 있었다. 고대의 예언서로 '고경참'이 있었고, 중세에 '삼한회토기' '삼각산 명당기', 근대에는 '도선비기' 등이 있었다. 그 중 대표격인 '정감록'은 정감, 이심, 이연 등 3인이 나눈 대담집 형식이며 천문학과 음양오행설을 토대로 풍수지리설, 해도진인설, 미륵신앙 등이 기저에 깔려 있다. 조선이 곧 멸망하며 계룡산 아래에 정도령이 이끄는 새 왕조가 세워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조선의 금서 목록 1위에 올라 있었다.
 

 대체로 정도령은 정권교체기만 되면 등장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정도령 바람을 탔다. 도령이란 칭호가 생뚱맞긴 했지만 정 회장의 등장은 화제거리 이상이었다.
 계룡산에 박혀 십수년 도를 닦은 공력은 없지만 가난의 시대를 상징하는 그가 미래와 복지를 이야기하자 민중은 흥분했다. 민중은 그렇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라앉는다. 정치9단 쯤 되는 이들은 민중의 속성을 잘 안다. 뜨거워지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심리의 저변엔 정책과 신념, 가치관과 철학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심장으로 자리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기장수 설화가 그렇다. 가난한 평민의 집에서 태어난 날개 달린 아기장수는 역적의 집안이 될 것이란 두려움에 부모에게 죽임을 당하고 제 꿈을 펴지 못하고 날개가 잘린다.
 민중의 바람은 비켜가는 태풍과 같다. 예보는 요란하지만 언제 지나갔는지 흔적도 없다.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대선정국의 한복판에 선 유력 주자들은 모두 국민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민중을 바라보는 지점에 서면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안철수의 행보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드라마틱하고 싶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새치 혀로 먹고사는 정치평론가들은 즐겁다. 처음엔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의 질문에 답하느라 즐겁고, 지금은 나오면 어떤 모양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느라 즐겁다.
 

 정도령 이야기도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민중이라는 이름이 유권자로 바뀌고 정도령이 안철수로 개명했지만,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아쉽지만 틀렸다. 안철수가 꿈꾸는 그림은 정도령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다. 그는 그저 고민할 뿐이다. 덩치가 커진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응분의 행동이 필요한가, 아니면 누군가를 내세워 뒷배로 남을 것인가로 여전히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안철수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내세우는 안철수다. 그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면 문제는 다르지만 아기장수의 날개를 원한다면 결말은 불행해 진다. 혼란의 시대는 지금이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 잊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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