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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다는 밀양으로 간다. 영남알프스 속살을 뚫고 난 길은 30여분만에 밀양으로 안내한다. 험한 산자락을 따라 길이 열린다. 산내와 산외면을 지나 부북으로 접어든다. 북동쪽에서 시작한 산세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이 너른 들판에서 생산되는 농업의 경쟁력은 인근 고장을 압도한다. 남쪽으로 낙동강과 밀양강을 낀 덕이다. 강의 언저리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평지는 계곡의 물을 끌어다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로 농사를 짓는다. 단지 하늘만 바라보던 천수답과는 달리 골 깊은 산세를 이용한 지혜의 산물이다.
 

# 공적인 개념으로 드러낸 정원-완재정

▲ 위양못의 한 섬에 위치한 완재정.
부북면 위양리 위양못(경남도 문화재 167호), 신라시대에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다. 화악산 줄기를 북쪽 배경으로 세우고 남쪽으로 난 들의 수리를 관장하고 있다.
 삼한시대 작은 부족국가였던 밀양은 신라에 복속되면서 밀성군으로 격상됐다. 너른 평야가 가져다주는 풍족함의 힘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백성을 위한다(陽良)'는 위양못을 만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축조 당시 제방 둘레가 1.7여㎞에 달하는 큰 규모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한번 보수를 거쳐 현재는 제방 길이가 160여m로 줄어들었다.
 저수지안에 다섯개의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인위적인 정원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 섬들 중 두 곳에 안동권씨 문중 제숙소(濟宿所)인 완재정(宛在亭)과 부속건물이 있다. 대부분의 정원이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사적이고 밀폐된 개념이라면, 완재정은 드러난 곳에 세운 공적이고 개방적인 개념을 접목했다.
 

 제방을 따라 걷는다. 숲 사이로 공기가 청량하다. 빛이 차양된 숲은 걷기 편하다. 길은 좁지만 인위적인 것들이 배제된 자연 그대로의 오솔길이다.
 이팝나무 꽃이 하얀 눈처럼 피어나던 그 풍경을 찍기 위해 선 사람들의 발자국이 '포토포인트'라는 안내판을 세웠다. 완재정이 찬란하던 봄날의 모습이다. 우거진 진초록 사이로 잠자는 듯 고용한 완재정의 처마가 사뿐히 드러난다. 산을 받으면 산색으로, 하늘을 받으면 하늘색으로 변한 물빛의 반영이 절정이다. 실제와 허구가 구분되지 않는 절묘한 고요, 걷는 이들의 발자국소리조차 여기선 잡음일 뿐이다.
 

 오랜 세월의 깊이를 품은 물빛은 맑고 잔잔했다. 허리까지 물을 채우고 시간을 건너온 버드나무는 어느새 휘어 물속에 반쯤 누워버렸다. 회갈색 둥치위로 초록의 연한 이끼들이 뿌리를 내렸다.
 물은 깊고 풍부해 사철 마를 날이 없다. 온갖 물풀들이 가득하고 개구리가 기척에 놀라 물로 뛰어든다. 20분 남짓 걷다보면 위양마을이다. 길목마다 감나무가 실하고, 담벼락엔 금계국, 창포, 작약이 피워낸 풍경 속 십 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예전 한번씩 못에서 고기를 잡을 땐 동네 잔치였어. 미꾸리, 미기 피라미 등이 천지였어. 그걸로 매운탕 끓이고 술 나누메 하루를 보냈어" 길 한켠의 정자에서 그 말을 만났다. 
 

▲ 위양못 여름 오후의 반영.

 촌부는 한가한 오후의 햇살아래 누운 채 외지인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울산에서 왔다는 소리에 현대차 다니는 아들의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할머니의 아득한 그 바람을 외면하지 못해 '울산에 있다고, 같은 회사에 다녀도 다 알지 못할 만큼 크다'고 했더니 한편으론 섭섭함이 한편으로 그 큰 공장에 다녀서 뿌듯함인지 '저그 저 버드냉기에서 사람들 사진 많이 찍어'라고 친절함을 보였다. 오래된 나무가 주는 편안함이 그 길에서 만난 농부의 허물없는 말과 닮았다.
 

 완재정 입구로 오자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밀양 8경의 하나로 지정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개인 소유로 문중행사 이외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다. 사유재산 보호를 위해 전면 개방은 불가하더라도. 주말만이라도 문을 열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공적인 장소에 드러낸 정원의 새로운 일면을 일궈낸 선조들의 지혜를 알리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 축적된 세월의 향기-퇴로고가마을
마을을 벗어난 길은 들을 가로질러 뻗어간다. 그 들에 온통 벼가 영글어간다. 논은 제 몸을 적셔 벼를 키워낸다. 그 자투리 논둑에 또 콩이 여문다.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탁 트인 전경에 오른쪽으로 오래된 기와집들이 즐비한 퇴로마을과 드넓은 저수지가 펼쳐진다.
 

▲ 밀양 연극·고가탐방길은 7.5㎞ 남짓한 길이다. 3시간여 걷는 코스 위에 문화와 전통 그리고 알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더해진 울창한 신록까지 선사하는 쉽고 편한 길이다. 사진은 퇴로고가마을의 풍경.

 퇴로고가마을은 여주이씨의 고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마을에는 경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씨고가(李氏古家)와 이병수 가옥(152호)이 있다.
 긴 돌담길을 따라 굽이굽이 골목이 이어지고 오래된 집들의 고색창연한 향기는 마른 햇살아래에 바삭거린다.
 경남도문화재자료 112호인 이씨고가는 1890년 항재 이익구가 건립한 이래 5대에 걸쳐 100년이 넘도록 보존된 전통적인 밀양지방 가옥이다. 현재는 기와를 얹은 토석장(土石墻)으로 구획된 넓은 대지에 남향으로 지은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 홑처마에 팔작지붕인 정침과 중사랑·별채가 남아 있다. 정침은 '청덕고가(淸德古家)'라는 당호를 얻었다. 

▲ 퇴로고가마을 흙담 골목길.

 

 항재선생은 전통적인 교육과 함께 측량술 등의 신기술을 양성하기 위해 화산의숙을 설립한 신지식인이었다. 항재의 차남 이병수가 분가해 지은 집이 이병수 가옥이다. 이 집은 조선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과 배치 규범을 따르면서도 현실에 맞게 공간의 확장과 근대적 재료 등을 사용해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여준다.
 마을 앞으로 주민들이 직접 쌓았다는 황토색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그 끝에 전통문화관이 있다. 전통문화관에는 김장, 된장 등 다양한 음식 만들기 체험 행사와 디딜방아, 널뛰기 등을 할 수 있는 놀이 체험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 정물같은 풍경-가산저수지
퇴로마을을 지나 길은 가산저수지를 왼편으로 끼고 한참을 돌아간다. 길은 정갈하다. 곳곳에 나무데크로 길을 내 걷기에 편안하고 탁 트인 눈길에 보는 맛이 좋다.
 맞은편 산 정상에 용호정이 우람한 듯 서있고 제방 쪽으로 걷다보면 전망대 이정표가 발목을 잡는다. 길목 곳곳에 밤과 감나무가 서있어 가을을 예고한다. 넓직한 나무데크 전망대에 서면 드넓은 저수지가 발아래 펼쳐진다. 문득 흰 물새 한 마리가 정물처럼 날아 물가에 앉는다.
 전망대를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면 월산리다. 마을에서 '효자각'을 만난다. 손가락에 피를 내 위독한 어머니 입속에 흘려 넣었다는 심재 설광욱(1791~1822)을 기린 건물이다.
 

# 폐교에 꽃핀 문화-밀양연극촌

마을을 돌아 나오면 큰 연밭이 펼쳐진다. 월산주민들이 운영하는 연 체험장이다. 연을 캐기도하고 연잎밥과 연잎차등을 팔기도 한다. 연밭을 벗어나면 별안간 분위기가 현대식으로 바뀐다. 폐교된 월산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밀양연극촌이다.
 밀양연극촌은 종합예술촌으로 1999년 개촌해 이윤택 감독이 이끄는 연희단 거리패 단원 6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성벽 극장'과 '숲의 극장' 등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야외극장과 '우리동네극장' 등 실내 공연장이 조성돼있다. 
 

▲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작품의 연출부터 제작, 공연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매년 7월초에서 8월초까지 펼쳐지는 여름축제기간이면 관객을 사로잡는 연극인들의 몸짓과 음악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짧은 7km의 길에서 많은 풍경을 만났다. 3시간여 동안 문화와 전통과 신록을 만나고 스쳤다. 스치듯 걸었고 음미하듯 머물기도 했다. 길은 험하지 않고 걷기에 가볍다. 그러나 가벼운 만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가지 길에서 이렇듯 다양함을 보는 것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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