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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계획으로 떠나는 여행은 지치기 쉽다.
여행은 보기위함이 아니라 경험을 얻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부산 범어사로의 즉석여행은 또 다른 깨달음을 안겨다 줬다. 거창하게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무엇인가 마음에 와닿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행은 유익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훌쩍 다녀온 곳에서 얻는 깨달음이 깊이 남는다.
범어사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울산 근교의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곳을 찾다 우연히 생각난 곳이 범어사다. 울산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울산에서 얼마나 걸리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주변 산새가 좋다는 정보 하나 뿐.
절은 지극히 가까이에 있었다. 부산 지하철 2호선 종점에서 앞자리. 울산 태화강역에서 1127번을 타면 그만이었다. 물론 범어사로 가려면 90번으로 갈아타야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교통수단은 결국,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동행한 친구와 기자는 버스를 타면 바로 잠들어버리는 스타일이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범어사까지 가는 과정을 두 눈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울산 동구에서 약 1시간 20분을 달려 절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적당히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 날 범어사는 법회가 있는 날이었다. 마침 이 날이 우란분절이라고 하는 백중날이었기 때문이다. 기도와 수행 정진에 매진한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날이란다. 말끔히 옷을 차려입은 신도들과 등산객들, 나들이객까지 모여 사찰 안이 북적였다.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걷는 건 이날 포기했다.
 

   
▲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범어사 내부 전경.

# 황금 우물 범천의 물고기가 노닐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이득도 있었다. 사전조사 없이 훌쩍 떠난 여행이었기에 범어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얼마 없었는데, 마침 중국에서 관광객 여럿이 이 곳을 방문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살며시 중국인들 사이에 붙어 가이드의 설명을 곁들여 걸어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범어사 입구까지는 조금 걸어야한다. 약간 경사진 길이지만,이 정도의 가파름이라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어느정도 입구에 다다르면 범어사의 유래를 담은 게시판을 볼 수 있다. 바로 옆에는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진 방명록이 있다. 부산시에서 관광지마다 설치해 둔 것인데, 마련된 기계로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길 수 있으며, 사진은 메일로도 전송이 가능하다. 우선, 방명록은 사찰을 모두 둘러본 후에 남기기로 하고, 본격적인 사찰 나들이에 나섰다.
 범어사는 우리나라 영남 3대 사찰 중 하나에 속한다. 운치있음은 물론이고, 역사적 가치까지 높은 셈이다. '금샘 설화'라는 옛 이야기를 들어보면 3대 사찰로써의 범어사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샘 설화는 부산의 금정산이 옛날부터 신령스러운 산임을 알려주고, 범어사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 지붕 4개의 독특한 일주문.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는 설화는 금빛 우물과 범천의 물고기의 내용을 담았다.
 금정산 산성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의 규모 역시 어마어마 했다. 우물에는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차 있었는데,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거기에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금빛나는 우물 금정(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범어(梵魚)라는 절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같은 내용은 삼국유사에도 실려있는데 신라 의상대사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 기둥 4개의 독특한 일주문
범어사로 통하는 문인 일주문은 다른 사찰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졌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4개인 것.
 관광객을 이끄는 가이드는 특히, 이 일주문의 기둥에 대해 설명하며 선조의 지혜에 대해 강조했다.
 문은 긴 기둥을 일렬로 초석으로 4개 세우고, 그 위에 높이가 낮고 굵은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식 건축을 이뤄 보다 튼튼하게 구성했다. 이 일주문은 부산시 유형문화제 제2호로 등록돼 있을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의 길은 마치 산책로를 연상케 한다. 작은 마을 같기도 하다. 산 자락에 위치한 범어사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들이 시골마을을 보듬고 있는 듯 하다.
 일제 잔재가 남아있어 허물고, 새로 짓고 있는 보제루 공사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공사 중이라 주변이 다소 시끄럽긴 했지만, 범어사 분위기 자체는 경건했다. 꼭 들러야할 대웅전 앞에서는 사찰 특유의 화려한 건축미에 잠시 넋을 놓았다. 절에 방문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은 사찰의 건축미는 화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민적인 이중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주말마다 절에는 자주 방문하는 편이지만, 사찰안에서 기도를 드린다는 건 여전히 어색했다.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절을 하고 있는 불자들, 특히 젊은 불자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숙연해졌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손을 모아 쭈뼛쭈뼛 기도를 드렸다. 언젠가는 이 자세도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거다.
 가을의 문턱에서 방문했음에도, 이날 날씨는 한 낮 무더위를 방불케했다. 분명, 아침에는 날이 흐려 선선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오가 지나니 따가운 햇볕이 비췄다.
 잠시 땀도 식힐 겸, 대웅전 귀퉁이에 있는 나무 밑에서 쉬기로 했다. 그리 높은 곳이 아닌데도, 금정산 아래 경치가 한 눈에 보인다. 경관만 봐선 산 정상에 오른 듯 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 했다.
 대웅전의 신도들을 뒤로하고, 알록달록 배낭을 멘 등산객들을 따라가봤다. 법회날이라 불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단체로 산에 오르려는 등산객들도 제법 보였다. 앞서 설화에서 전해지듯 명산이긴 한가보다.

# 편백나무숲과 발아래 장관

   
▲ 금정산 제2등산 코스에 들어서면 곧게 뻗은 편백나무 숲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이들이 다다른 곳은 금정산 제2등산 코스였다. 대웅전을 나와 템플스테이촌을 지나면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이 곳에 빽빽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편백나무와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다소 북적였던 범어사였지만, 평소 범어사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다음 코스로 이 등산로를 택한다면 심신이 편안해 지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설치돼 있지는 않다. 다만,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큰 바위가 군데 군데 있을 뿐이다. 오히려 벤치보다는 바위가 더 잘 어울린다. 등산객들 역시 삼삼오오 모여 바위에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해댔다. 어쩌면, 좋은 공기 마시며, 같이 하고픈 사람과 함께 마음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꺼내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건너편에는 혼자 등산로를 찾은 중년의 남성도 보였다. '도' 라도 닦는 양, 양반다리를 하고 바위에 앉아 사색에 빠졌다. 어떤 방법인들, 이 곳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허용된다. 도시에서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불청객인 매미도 '맴맴' 울어대지만, 이 소리도 산새소리와 만나면 치유의 수단이 된다.

 편백나무들 사이에는 계곡의 큰 바위 틈에서 자란 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뒤덮여있다. 등나무가 무리지어 사는 계곡을 등운곡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 곳을 두고 금정산 절경의 하나로 꼽는다.
 숲길에서는 진정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자연이 공존하는 범어사는 나를 찾을 수 있는 치유의 장소이다. 한껏 휘몰아치고 언젠가는 사그라들 힐링 열풍이지만, 범어사와 금정산 일대는 언제나 치유의 바람이 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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