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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은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있다.
대송마을의 예전 이름은 대륙동(大陸洞)이었다. 대운산 줄기가 바다로 뻗고 있어 대운산의 대(大)자와, 육지의 끝(간절곶)이 튀어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후 대륙동의 대(大)자와 송정동(松亭洞)의 송(松)자를 따서 대송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간절곶에는 지난 1920년에 세워진 등대가 있다. 이 등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등대의 역사는 물론 울산 항만과 공업단지에 대한 자료도 볼 수 있다. 등대 아래 소망길로 마차가 관람객을 태우고 지나가고 있다. 이창균기자 photo@

대송리에도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흔히 전해오는 '골매기' 이야기가 존재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부락의 수호신을 '골매기' 혹은 '골매기 신'이라 부른다. 골매기신은 그 마을에 제일 먼저 정착해 살게 된 조상을 말하는데 부부인 경우가 많다. 남자는 '골매기 할배'가 되고, 여자인 경우에는 '골매기 할매'가 된다.
 대송마을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사람은 공 씨(孔氏) 할아버지와 구씨(具氏) 성을 가진 할머니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한 시기는 500년 전. 마을 전설에 따르면 공씨 할아버지와 구씨 할머니는 죽어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고 이들을 위해 제당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제당이 현재 간절곶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정월 보름에는 반드시 골매기 할배와 할매에게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쉬엄쉬엄 걸어 2시간 코스
'소망길 걷기 대회'의 출발지는 공씨 할아버지와 구씨 할머니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지는 대송포구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무허가 활어 횟집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던 곳을 깨끗하게 정비해 주차장과 시계탑을 세운 곳이다.
 시계탑에서 걷기대회 코스를 따라 북쪽 해안 길로 나서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 '메이퀸'의 촬영이 한창이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인 간절곶 세트장.

 드라마 주인공 혜주(한지혜 분)가 무엇인가 갈망하듯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씬이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수십 명의 관광객들이 드라마 촬영현장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촬영장을 뒤로하고 드라마 '욕망의 불꽃' 촬영 당시 만들었던 세트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민간 사업자에게 임대돼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레스토랑 손님 외에는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표지가 있었지만 출입을 막는 이는 없었다.
 세트장 앞으로 난 산책길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다. 서양풍의 세트장 건물과 그 뒤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해송, 그 뒤로 보이는 맑은 가을 하늘이 눈을 즐겁게 한다.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니 김상희의 '울산 큰애기' 노래비다.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데나…>
 울산사람이라면 몇 번쯤 들어봤을 향수 가득한 노래를 읊조리며 걷다보면 산책길은 최근에 건립한 활어 회센터에서 90도로 꺾여 언덕길이 된다. 100미터 가량의 언덕이 끝나면 키 큰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아주 먼 그리움의 시간들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칭얼거리듯 들리는 파도소리가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아련하게 들린다. 

   
바닷가 언덕에 세워진 가수 김상희의 <울산 큰애기> 노래비.

 

 소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다시 간절곶 진입로를 만난다. 진입로를 따라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먼저 장 빨리 볼 수 있는 간절곶 낭끝바위로 향한다. 울산의 옛 읍지에는 간절욱조조반도(艮絶旭肇早半島)라는 기록이 내려져 온다. 이는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새벽이 온다'는 뜻이다. 간절곶은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간짓대처럼 뾰족하고 길게 나온 곳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간짓대는 옛날 빨래를 널던 대나무 장대를 말한다.


#간절곶 등대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 바다 한눈에
간절곶 언덕 위에는 17m 높이의 등대가 있다. 1920년 3월 건립 됐으며 이후 2차례의 등탑 개량을 거쳤다. 예전에 사용하던 등탑(등대 상단부)을 정원에 내려놓아 관람할 수 있다. 또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로도스섬의 거상이 마당에 있는데, 기원전 290년쯤 소아시아 인근 로도스섬에 세워진 36m짜리의 축소 모형인데 고대 신화 속 태양의 신 '렐리오스'를 형상화한 것의 청동상이다.
 1층에 사무동이 있고, 2층 밀레니엄 전시실에는 항로표지 관련 안내자료 및 장비 전시, 선박 및 해양관련 자료들과 울산항을 소개하는 시설을 갖추어 놓아 흥미로움을 더한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등대의 필요성이나 입지 조건, 울산의 항만과 공업단지와 관련한 자료로 설명할 수 있어 체험과 학습의 장으로 활용할 만하다. 
 

   
간절곶 진입로에서 등대로 오르는 데크길.

 등대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온산공단과 멀리 방어진 일대가 보이고, 대마도가 보일 때도 있다고 한다. 개방은 하절기는 오전10시부터 오후6시이고, 동절기는 오전10시부터 오후5시다.
 등대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소망우체통이 있는데 높이 5m, 무게가 7t 이나 된다. 강철 재질로 세계 최대 규모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고, 내부에 무료 소망엽서가 비치되어 있고 우편배달이 가능한 진짜 우체통이다.
 편지는 말로 하기가 어려웠던 가슴 속 이야기들은 쓸 수 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씨 속에 마음이 담아 낼 수 있다. 간절한 소망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근처에는 바다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쥔 어부의 동상,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의 동상이 있다. 모두 무사귀향을 비는 가족의 소망이 담겨 있다.
 새해 각오를 다지는 거북이 모양의 비석 '새 천년의 비상'에는 '새 천년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창조하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해변산책길로 갈무리하며 소망 하나 품어가길
포장마차들이 줄지어선 해안 길을 놓아두고 등대 옆으로 난 마을길로 발길을 잡는다. 몇 호 되지 않는 마을이다. 한때는 번성했을 바닷가 마을엔 지금 사람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언덕배기에 있는 분교(대송야영장)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다.
 길은 잠시 국도를 만난 후 다시 바닷가 마을을 향해 이어진다. 언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바다는 온통 물비늘이다. 물비늘이 가을 햇살에 가늘게 반짝이는 풍경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걷기대회 마지막 구간인 해변산책길.

 

 다시 바닷가로 내려온 길 끝에는 바다로 이어진 평동마을 방파제가 있다. 태풍을 피해 뭍으로 올라왔던 어선들이 크레인에 매달려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점심때가 가까웠는지 포구에 늘어선 횟집에 손님이 북적인다. 주말 오전에 개최되는 걷기대회가 끝난 후 들러 신선한 바다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으리라.
 막바지에 이른 걷기 길은 이곳부터 해변산책길이다. 산책길 옆 포장마차 군락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눈과 귀를 등대와 바다 쪽으로 열어놓으면 그만이다.
 

 때마침 혜주를 태운 승용차를 끌고 있는 방송차량이 등대를 지나 해변산책길을 따라 내려온다. 그녀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드라마 속 소망이어도 상관없다. 간절곶에서 가슴에 품었던 그녀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녀를 태운 촬영차량 너머 등대위로 펼쳐진 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다. 쉬엄쉬엄 걸어 2시간. '소망'하나 쯤 가슴에 새기기에 충분한 시간 길이었다. 글=강정원기자 m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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