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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시계에서 보면 오후를 지나면서 깨닫는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 여태까지 상대방이 불편한지를 모르고 해 왔던 일상에서의 행동이나 일들이 잘못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상의 대인관계에서의 불편함이란 모르는 나는 괜찮지만 알고 있는 상대방은 어려워하고 그 평가는 언젠가 내가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들을 짚어본다.

 첫 째는 일상에서 자주 보게 되는 손가락질이다.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갑자기 쑥쑥 내미는 손가락질을 당해 보면 황당해 진다. 그것도 영업을 위한 자리이거나 예의범절을 지켜야 할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손가락질은 손+가락+질로 만들어진,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좋지 못한 행동 등을 이야기하며 그의 흉을 보는 짓이나, 손가락으로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짓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에게 하는 손가락질은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손가락질의 각도가 얼굴을 향하거나 힘 주어 내밀게 되면 삿대질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글에서는 손가락질에 대해서 이렇게 잘 표현하고 있다. 타인에게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에게 향한다. 검지는 상대를 가리키지만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 나머지 엄지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며 신의 심판을 청구하고 있다. 이것은 질책이 1이라면 자책은 그보다 3배나 중요하다는 뜻이다.

 몇 년 전에서야 우연히 유아원에 다니던 4살짜리 어린 조카를 통해서 손가락을 펴서 나란히 하고 위로 향하도록 가볍게 내밀면서 사람을 가리키는 방법을 배웠다. 나를 부끄럽게 했던 짧은 시간에 긴 깨달음이었다.

 둘째는 공공의 것에 대한 골프의 룰 같은 양심의 잣대다. 어떤 상황에서도 라운딩을 하는 다른 플레이어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면 벌타가 되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음과, 라운딩 내내 스스로가 심판이 되어야하는 양심 때문에 골프의 룰이 정직한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운딩을 하다보면 양심을 비겨나는 욕심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운동이 끝나고 장갑을 벗을 때면 그 부정한 유혹을 이겨낸 양심이 더 소중해 지게 하는 것이 골프의 룰이다.

 가끔 남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에게는 무한 관용을 베푸는 경험 많은 골퍼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인생이라는 달리기에서 남보다 가까운 거리를 설정하거나 출발신호 전에 먼저 내 달리기 위해 혈안이 되고 더러는 반칙을 해서라도 끝내 앞서가야 하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공공의 것을 소중히 하는 문화가 아쉽다. 더 아쉬운 것은 공무원, 사회 지도층, 회사 경영자가 공공의 돈이나 회사 돈을 자신의 것과 구분 못하는 돈 씀씀이로 사회의 지탄을 받거나, 자손의 안위까지도 걱정해서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산을 빼돌리다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워낙 만연해 있는 사회문제다 보니 이제는 그런 뉴스에는 맷집이 생겨 아무렇지 않거나 그 사람이 자신이고 싶은 부정적인 충동까지 생길 정도다. 이들은 부정하면서 대는 이유는 수십 가지도 더 될 수 것이지만 이유가 있다고 공짜의 달콤함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게 되고 결과는 자신을 포함하는 여럿, 더해서는 국민의 책임이 되고 만다. 이제는 부정을 부정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다른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존경받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문화가 필요하다. "양심에 따라 플레이하기 때문에 골프는 위대한 게임"이라는 말처럼 양심 있는 인생이 위대해지고 존경받는 세상이면 좋겠다.  

 셋째는 No smoking 보다 Smoking Free면 어떨까? 얼마 전 혐연권과 흡연권에 대한 논란으로 헌법재판소의 판정까지 했다. 결과로는 혐연권이 인정받은 판결이었다. 오래전에 회의실에 "금연(No Smoking)" 대신에 "Smoking Free"라는 문구가 붙여졌다. 흡연? 금연 구역인가 하고 모두 의아해 했을 때 유럽 지사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금연"의 의미로 쓴 것이고 유럽에서는 금연을 그렇게 표현한단다. 생각해보니 강요격인 "No Smoking" 보다 흡연으로 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배려하는 마음이 언어에도 묻어나 있었다. 상사의 기호에 따라 원하지 않는 음주 흡연조차 자유롭지 못하는 우리 현실문화에서 보면 남을 그리고 약자들을 알아서 스스로 배려하는 문화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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