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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내 기억 속의 인디언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다. 황무지를 개척하고자 서부로 향하는 백인 주인공들을 화살과 총으로 위협하는 인디언들은 참으로 다 없어져야할 흉악범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본 미국 서부영화는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인디언 잔혹사를 읽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이 잘못된 것인 줄 깨닫게 되었으니 참 어리석기도 하다.
 
본래 그 넓디 넓은 미 대륙의 주인은 인디언이었고, 평화롭게 사는 그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총과 무기로 땅을 뺏은 것은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들이었다. 원 주인이었지만 선진 문화와 뛰어난 무기를 가진 백인들에게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 땅을 다 내어주고는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50개의 주를 연방으로 하는 백인 주도의 거대 국가로 인디언 잔혹사보다 그들의 개척정신에 더 빛나고 찬란한 역사의 의미를 두고 있다.
 
우리네 옛날 이야기 속에 흔하게 나오는 여우와 늑대,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찌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깡그리 이 땅에서 사라졌단 말인가? 어느새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멧돼지와 길고양이가 되어버렸으니 동물의 개체 수 조정이 자연스럽게 되지 못하고 그 수가 늘어나 민가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사방팔방으로 뚫린 고속국도나 자동차 전용도로 덕에 전국이 일일권으로 엮여 생활은 참으로 편리해졌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그저 짧아진 왕래 시간에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만 생각했지 야생동물에 대한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다. 산을 뚫어 길을 만들고 산 골짝 골짝까지 차와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으니 야생동물이 안심하고 살 곳이 어디 있는가? 
 
산돼지나 고라니들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 민가까지 내려와 밭을 파헤치는 바람에 농부들에게 해악을 입히기도 하는 나쁜 동물이 되어버렸다. 먹이를 구하거나 제 짝을 찾기 위해 이 산 저 산으로 자리를 옮기다 올가미에 걸려 죽거나 무참히 길에서 차에 치어 비참하게 죽은 동물들. 그래도 요즈음은 야생동물 보전을 위해 간헐적으로 동물통로를 만들어 둔 도로를 만들긴 하지만 야생동물들더러 찻길이 위험하니 멀더라도 안전통로를 찾아서 그리로만 다니라고 교통안전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눈 가리고 아웅하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그곳이 우리 인간의 땅은 아니었다. 그긴 산토끼도 살았고, 삵괭이도 살았고, 여우와 늑대, 호랑이도 있었다. 그들보다 훨씬 머리가 뛰어난 인간이 그들을 먹이로 하고, 추위를 막는 털옷으로 이용하기 위해 사냥을 하면서 그들의 종족 보전은 아예 염두에도 없었다. 그리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산을 개간하여 농토를 넓혀가고, 집을 짓고 길을 닦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그들이 사는 지역을 침범해 들어간 것이다.
 
집을 잃고 먹이 구할 곳을 잃은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민가를 내려오면 죽임을 당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동물들이 살기 안전한 보호구역을 만들어 살게 하면 될까?
 
수 년 전 88고속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을뻔한 야생 삵을 치료와 재활훈련으로 어렵사리 되살려 야생으로 돌려보냈지만 애초의 사고 장소에서 결국 로드킬(road-kill)로 숨졌다는 소설 같은 실화를 보면서 동물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그래도 일부에서는 다시는 종족 말살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늦게나마 반달곰을 야생에 살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그 야성의 동물을 쇠창살에 가두어 사육하면서 산 채로 빨대를 꽂아 쓸개즙을 빼내고 있는 파렴치한도 있고, 산 짐승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정력에 좋다면서 돈을 주고 빨대에 입을 대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결국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인간들이다. 인간의 편리성만 추구하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동물들이 살지 못하는 곳에 사람도 생존하기 힘들다.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하고 문화의 이기도 누려야 하지만 애초 이땅의 주인이었던 동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속가능발전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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