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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대 43, 49대 45. 오늘자로 발표된 19대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결과다. 앞에 것은 거의 매일 중계방송 하는 모 신문사의 조사이고 뒤에 것은 한국갤럽의 결과치다. 특이한 것은 같은 날짜에 발표된 여론조사의 1,2위가 조사기관에 따라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안철수가 49인 신문사의 여론조사와 박근혜가 1위인 한국갤럽의 조사는 지금 우리 대통령 선거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론조사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록에는 로마시민들의 가치관을 조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서양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여론조사의 기원을 로마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여론조사는 놀랍게도 조선조 세종 때 있었다. 토지세 징수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고가던 시절 세종은 '연분6등법, 전분9등법'을 놓고 "의정부·6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전직 관리) 품관과 각 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가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고 했다. 그야말로 가가호호 가부를 묻는 확실한 여론조사였다. 로마시대의 조사나 세종의 조사 모두가 대면조사였기에 신뢰도가 높았지만 현대적 여론조사는 일대일 방식을 고수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화제를 부른 것은 미국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였다. 이 여론조사 기관은 1920년부터 1932년 선거까지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지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193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였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사람들과, 자동차 소유자들 중 1,000만 명에게 우편엽서를 발송해 답을 얻는 방식을 취했다. 회수된 답은 236만 7230장이었고 그 결과 공화당의 랜던 후보가 57%p, 민주당의 루즈벨트가 43%p를 얻어, 공화당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여론조사를 한 갤럽이었다. 갤럽은 정확하게 루즈벨트가 승리할 것을 예측했다. 그것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처럼 200만 명이라는 많은 수가 아닌 1,500명이라는 적은 수로 당선자를 맞췄다.

 200만 명의 조사가 1,500명의 조사보다 오류가 많은 결과는 당연했다. 우편조사 방식을 취한 다이제스트의 경우 대부분의 응답자가 중산층 이상의 계층인 반면, 갤럽은 표본추출 방식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이후 갤럽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3차례 결과를 모두 완벽하게 예측해 여론조사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영원한 규칙은 없는 법이다. 모바일 세대가 늘어나고 집전화보다 휴대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오늘날의 여론조사는 과거 갤럽식 방법으로는 오류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의 경우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방송사나 신문사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예측을 빗나간 사례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여론조사를 두고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여론조사를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여론은 가만히 있는데 여론조사가 춤을 추니 덩달아 후보 진영과 언론도 갈팡질팡하는 양상이다. 이미 정설화 된 이야기지만 유권자의 심리는 여론조사처럼 출렁거리지 않는다. 부동층의 수가 들쭉날쭉한 것을 두고 표심의 이동 운운하는 이야기는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대선 보도가 거의 경마장의 경마중계 수준이다. 1번말과 2번말, 3번말을 출발시켜놓고 오만가지 가능성을 설정하고 무수한 가능성을 상상한다. 하기야 정치평론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나 여론조사를 기업화 시킨 사람들에겐 더 없는 호재다. 그런데 말이다. 우습게도 여론은 언론에서만 요동칠 뿐, 유권자들은 대체로 눈만 껌뻑거릴 뿐이다.

 2004년 미국 프리스턴 대학에서 유권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처음 보는 정치인 2명의 사진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첫인상만으로 누가 당선될지 맞춰보라고 한 결과, 실제 투표결과와 70%의 일치율을 보였다. 8~10세의 어린이들에게도 두 정치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두 사람이 선장이라면 어느 배에 타겠느냐고 물어보니 어른의 선택과 유사했다. 즉, 어른이 뽑으나 어린이가 뽑으나 투표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의사결정은 의외로 즉물적이다. 결정을 빠르게 하고, 다음에 들어오는 정보는 기존 정보와 부합되면 받아들이고 부합되지 않으면 그 정보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지지 후보에 대한 충성도는 개별적인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 충성도가 변하는 시점은 이성이 작동하는 시간이다. 바로 후보 간의 토론이 벌어지고 눈빛이 교환되는 선거막판에서야 충성도가 낮은 유권자들의 이성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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