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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현재 건물 중앙에 길게 설치된 불단 밑에는 석각 화엄석경이 수장돼 있다. 각황전은 그 거대함과 아울러 이 화엄석경으로도 이름이 높다.
첩첩산중에 숨은 고찰은 도시의 삶에 지친 이에게 훌륭한 안식처다. 그 중에서도 품이 깊고 많아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리는 지리산은 휴식을 취하기에 으뜸이다.
 이 지리산이 위치한 전남 구례군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7교구 본사인 '화엄사'와 지리산 3대 고찰 '천은사'가 자리한다. 수려한 산세에 드리워진 이 두 사찰의 풍경을 눈에 담다보면 어느덧 몸과 마음은 새로운 생기로 가득 차오른다.
 가을 햇살에 윤기가 더해가는 날, 청록의 단청이 없이 속살을 드러낸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입구는 생각보다 길었던 탓에 차로 운전해가는 것을 택했는데 지나다보니 배낭을 둘러메고 호젓하게 걸어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도착한 화엄사 입구. 마침 가을 비가 온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계곡 물 소리가 우렁찼다. 어느 덧 울긋불긋해진 색이 조금씩 감돌기 시작했지만 아직 녹음이 사라지지 않은 산야의 풍광에 눈과 머리가 절로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544년 창건 흘러온 세월만 천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하였다하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화엄은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한다는 뜻으로, 이 뜻을 살피는 순간 스스로 얼마나 덕을 쌓고 살고 있는지 순간 마음이 뜨끔해졌다.
 과거의 가람들은 옛 역사의 잔영들을 자신이 버텨온 세월만큼이나 깊숙이, 또 다양하게 지니고 있다. 단청빛은 바랬어도 그 모습은 여전히 위엄 있는 대웅전 처마의 단아한 곡선, 절터에 들어서면 보이는 불당의 아늑한 풍경.. 이런 것들이 그 모습을 찾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느긋하고 호젓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호젓한 화엄사 경내를 산책하고 있는 연인.

#사찰내 각황전 등 국보·보물 12여점 산재

사찰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로 꺾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문은 금강문과는 서쪽방향으로 벗겨놓는게 독특한 특징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普濟樓)에 이르고 이 보제루는 다른절에서는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달리 루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절내에는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방향으로 보이며 동쪽탑의 윗부분 보다 한단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단청없는 각황전의 매력

화엄사의 경우 특히 다른 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청이 없는 이 각황전이 있어 그 위용과 자태에 호젓함을 넘어 압도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우리나라 고찰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2층 건물인 각황전은 화엄사의 중심이다. 대부분의 절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는 것과 다른 내용이다.
 각황전은 조선 숙종 25년(1699)에 건축되었는데 불교를 괄시하던 조선 시대에 이 정도 규모의 사찰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각황전 현판 글씨가 숙종의 친필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리고 각황전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도 있다. 단청이 없는 건축물에서 뿜어 나오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사자 3층 석탑을 보고 내려오다 보이는 각황전의 지붕 옆 모습은 여덟 팔(八)자를 이루고 있는 팔작지붕이다. 각황전 관찰의 백미는 기둥 모서리에 서서 고개를 수직으로 꺾으면 보이는 처마다.
 처마를 단청으로 채색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나무의 속살을 그대로 발가벗겨 보여주는 것 또한 단청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는 수덕사 등 고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양식이기도 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짠 구조가 기둥 위 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그 모습이 어떤 채색 구조 보다 화려해 보인다.
 각황전 안의 모습은 더욱 웅장하다. 밖에서 볼 때 2층 구조인 건물의 내부는 통 층 구조다. 4보살상과 30여래불상들이 유난히 후련해 보이는 것은 높은 천장이 주는 시원함 때문일 것이다.
 

#4사자 3층석탑·석등·괘불 등도 볼거리

각황전 앞마당에 있는 석등 역시 국보 제12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이 석등은 높이가 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가운데 기둥을 장고 모양으로 한 것이 특이하다. 이것은 통일신라 후기 석등에서 자주 사용되던 디자인이라고 한다.
 8각으로 이뤄진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는 4개의 창을 뚫어놓았는데, 밤에 불 밝힌 석등을 보면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는 부러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 후기 누각인 화엄사 '보제루' .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을 많은 이들이 듣고 있다.

 화엄사에는 국보 제301호인 괘불도 있다. 정식 이름은 '화엄사영산회괘풍탱'. 괘불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을 말하는데, 화엄사 불괘는 높이 11.95m, 너비 7.76m의 크기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어 있다.
 불괘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필선이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다고 한다. 이처럼 각황전을 비롯해 탑, 석등 등 가람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중간마다 여러 위기가 있었겠지만 그 세월의 흔적을 가만히 더듬다보면 아등바등 살게 되는 우리의 삶은 한낱 가벼운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때문에 화엄사가 던지는 '행동을 부지런히 하고 덕을 쌓아라'는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다시 천왕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함께 가볼 만한 사절-천은사

구례에 있는 천은사 역시 지리산이 품은 3대 고찰 중 하나로 고참에 속한다. 천은사가 좋은 건 산 근처에 있는 화엄사보다 이름이 조금 덜 알려졌다는 거다. 때문에 이 곳을 걷는 내내 화엄사보다 더욱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잘 정비된 탓에 산행이라고 하기도 조금 그랬지만.
 천은사는 신라 중기인 828년, 인도의 덕운 스님이 세운 절. 경내에 흐렸던 정신을 맑게 하는 샘이 있어 창건 당시에는 '감로사'로 불렸다. 그 샘물을 마시고 좀 더 '쉽게' 깨달음에 도달하려던 스님들이 몰려들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파괴하는 바람에 사라질 뻔 했던 위기도 겪었다. 다행히 조선조 숙종이 정성스럽게 재건해서 오늘날 우리도 보고 만지고 앉고 쉬어갈 수 있다.
 찾는 이도 적거니와 민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산중에 있어서 느긋하게 산책하며 자연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땡볕을 피해 숲으로 숨을 수도 있는데, 천은사 앞 소나무 숲 탐방로는 걷는 데 반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숲을 빠져 나왔다면 일주문을 지나 경내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점심 공양 한 끼 얻어먹길 권한다. 글·사진=최창환기자 c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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