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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이 '노무현 망령'으로 시끌하다. 재임시절, 숱한 말잔치로 세상을 요란하게 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18대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국가 정체성 조차 제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이 우리사회의 현주소다. 이른바 'NLL 발언'의 진실공방은 단순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에서 북방한계선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느냐가 핵심이다. 그 발언이 누구의 주장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입장과 실제 발언 내용이 무엇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그 문제는 뒤로한 채 녹취록의 존재 유무와 파기의혹에서 진실공방과 책임여부까지 날을 세우고 있다. 책임진다면 국정조사에 응하겠다는 야당이나 이미 알려진 사실을 재탕하며 또 다른 진실이 있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여당의 태도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기록물 파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각종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옮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사실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민감한 내부 자료들을 파기해 '차기 정권에 대한 방해'라는 비판을 받은 사실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기록물 파기 및 유출은 모두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정권 말에 이뤄졌다. 2008년 7월 노 전 대통령 측이 퇴임 직전인 2월 청와대 메인 서버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봉하마을로 가져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는 "유출된 기록물이 원본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이며 대통령 기록물을 유출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 측은 "가져온 자료는 모두 사본이고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기록에 대한 열람권이 보장돼 있다"고 맞서며 청와대와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에 기록물 하드디스크를 넘겼지만 국가기록원이 다시 서버를 포함한 전산장비 일체의 반환을 요청하면서 갈등이 이어지다 결국 검찰이 기록물 유출 논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정권의 종말은 숨길 것이 많은 법이다. 숨기고 덮고 가려야 하는 일들이 5년 동안 얼마나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국정의 최고통치자가 국가원수로 행한 숱한 행적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공개될 수 없는 이야기나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일까지 공개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덕목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한 정상간에 이뤄진 대화 가운데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내용은 다른 문제다. 남북 정상이 미래의 한반도를 그려나가는데 일정부분 두 사람 만의 교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권이든 양측의 정상이 가능한 자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민족의 미래를 이야기하길 희망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NLL 발언'은 공감대 형성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밝힌 NLL관련 발언은 대체로 이렇다. "NLL은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다. 영토선이라고 하는 건 국민을 오도하는 거다."(정당대표 만남에서), "설사 NLL에 관해 어떤 변경 합의를 할지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북한 땅도 다 우리 영토로 돼 있으니까 NLL이 위로 올라가든 아래도 내려오든 우리 영토하곤 관계없다. 하지만 어떻든 NLL을 안 건드리고 왔다."(민주평통 모임에서) 이같은 발언은 이미 공개된 발언이다. 문제는 김정일과의 단독회담에서 노 전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했느냐는 사실이다. 이와관련해  당시 회담 기록을 위해 배석했던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휴대용 디지털 녹음기로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회담 발언을 모두 담았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그 기록을 녹취한 파일이 청와대와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쯤되면 해법은 간단하다. 당시 남북 정상간 대화 가운데 NLL과 관련한 발언이 존재했는지와 있다면 그 발언의 내용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중대하고도 민감한 문제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NLL이 단순한 영토선이나 임계선의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권 방위의 중요한 방어선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간과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발언의 내용이나 책임 유무로 정치적 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밝혀 국민들에게 공개하면 된다. 국민들은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 사무실을 주고 보좌관을 주고 세비를 주고 있다. 말장난이나 하고 어깃장이나 놓는 공방전이 길어지면 정작 짜증나는 것은  유권자들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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