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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 가까이 와 손을 넣어봐 나는 아주 맑고 깨끗해" 쉼 없이 불러대는 시냇물의 조잘거림, 시원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주나무의 붉은 잎, 양지녁에서 해바라기하는 들국화와 가을벌레들의 노래 소리, 모두가 정겹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 숲은 도토리며 개암, 온갖 종류의 산열매로 언제나 풍성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산행 팀의 숲 해설을 맡았다.
 맑고 깨끗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선생님 어떤 나무가 생강나무예요"
 "생강나무요?"
 "네"
 "저기 잎이 갈라진 나무 예요"
 "잎을 비비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 불린답니다."
 "그래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다 따 가기 전에 빨리 잘라 가야지"
 "으악 뭐하시는 거예요"
 "세상에 등산배낭 속에 전지가위를 갖고 다니시다니……. 맙소사……."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생강나무가 가운데 줄기만 남았다. 이건 등산을 온 등산객인지 약초를 캐러온 약초꾼인지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모처럼의 산행이 일행의 어이없는 행동으로 인해 기분이 언짢아졌다.
 
언젠가 들꽃학습원에서 해설하시는 분으로부터 들꽃학습원내에 있는 나무의 약효에 대해 해설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밤 누군가 톱을 가지고와 밑둥치만 남겨 놓고 모두 잘라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후로 선생님께서는 식물의 효능에 대해서는 해설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후환이 두려워 그 후로는 하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 언제쯤 나아질지……. 숲 해설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하나가 어떤 것이 약초인가 하는 것과 어떤 것이 나물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식물은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두 나름대로 효용가치가 있다."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라고.
 
캐나다 벤쿠버섬 서해안 원주민(아메리카 인디언)은 숲에서 모든 것을 얻었는데 식량으로 쓰던 열매나 물고기는 물론 질병을 치료할 때도 다양한 숲속 식물을 이용 했으며 집을 지을 때나 카누를 만들 때도 숲속 나무를 쓰러뜨리기보다 가능하면 이미 쓰러진 나무를 이용했다.

또한 이들은 유럽인들과 본격적인 교역이 시작되기 전인 20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측백나무와 흡사한 시다나무 껍질을 벗겨 모자, 의복, 바구니 등을 만들었는데 나무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으며 원주민 여성은 나무껍질을 벗기기 전  나무의 정령에게 "나무님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이 필요합니다.

그 옷의 일부를 제게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올리는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가슴높이에 한 뼘 정도 칼자국을 만든 다음 위로 잡아당기면서 껍질을 벗기는데 껍질을 벗길 때는 나무줄기의 1/3 정도만 벗겼다. 그 이상 벗기면 나무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옛날 나무꾼들은 나무를 하기 전에 나무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나무가 너무 놀라지 않게 알려 주기위해 나무에게 절을 하고 이어서 "도끼 들어가요" 하고 크게 외쳐 알린 뒤에 도끼질을 시작 했다고 한다.
 
또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추석송편을 찌기위해 솔잎을 딸 때 꼭 어두워진 뒤에 땄으며 그것도 도둑질하듯 매우 살그머니 땄는데 이는 밝을 때 솔잎을 따면 소나무가 겁먹고 아파할까봐 소나무가 잠든 틈을 타서 아주 살그머니 솔잎을 땄다. 그래야 소나무에게 덜 미안할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대어 서로 도우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디언과 우리 조상님들의  숲에 대한 윤리이자 우리 모두가 자연에 대해 가져야할 마음이다. 숲을 아끼고 보호할 때 숲은 그 넉넉한 품을 우리에게 내어 줄 것이다. 숲과 자연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도 그 자연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숲은 우리에게 제 가진 것을 언제나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우리가 숲을 아끼고 사랑하는 동안은 언제까지나 그리 할 것이다. 오늘도 숲에는 새소리 울려 퍼지고 바람은 귓가로 달려와 숲의 소리를 전한다.
 "우리 함께 아끼고 사랑하며 살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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