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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경제였다. 불황의 그늘에서 담요 한 장이라도 움켜쥐려하는 유권자들에게 오바마는 'Forward'를 외쳤다. 조금 더 앞으로 가자는 오바마의 외침에 유권자들은 미래를 봤다. 패배한 롬니가 들고 나온 것은 이번 기회에 확 바꿔버리고 갈아엎자는 쪽이었다. 정권교체만이 미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롬니의 외침은 심장은 뛰게했지만 가슴을 덥히지는 못했다. 더 강력하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 없었다. 결국 모호하고 추상적인 정치적 수사보다 함께 같이 미래를 향해 뛰어 보자는 쪽에 유권자들은 줄을 선 셈이다.

 불과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우리의 대통령 선거도 양자구도로 변모하는 양상이다. 지난 며칠간 온 나라가 야권의 후보 단일화 뉴스로 요란한 시간을 보냈다. 국가 빚이 3,000조를 넘어섰다는 보도나 수출시장의 전망이 적신호라는 진단이나 자살자가 급증하고 하우스푸어에 이어 렌트푸어까지 이 시대 가장들의 한숨이 지축을 흔들어대는 이야기도 단일화에 묻혀버리고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유권자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문재인과 안철수 선거캠프는 오로지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판에서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 외에는 관심이 없다. 하기야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는 사람들조차 정치 이야기에는 열을 올리는 사회다보니 선거판이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기정사실화 됐다. 어차피 이번 선거가 시작될 때부터 이들의 단일화는 시기와 방법의 문제였을 뿐, 단일화는 필연적 수순이었다. 문제는 단일화에 나선 두 후보의 색깔과 빛깔이다. 중도 무당파인 안철수와 민주당 지지층의 문재인은 근본적으로 이질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한쪽이든 상대가 단일 후보가 되면 일정부분의 지지기반 이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들 두고 '배타적 지지층'이라며 이들의 표심을 안고가는 것이 단일화의 숙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문재인보다 안철수 쪽이 배타적 지지층을 많이 품고 있기에 문재인측의 셈법은 복잡해 보인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치와 철학의 단일화다. 문 캠프 쪽 참모들은 이를 좀 더 모호하게 꾸며 '아름다운 단일화'라고 부른다.

 안철수의 가치, 안철수의 철학은 무엇일까. 그가 1년 전 박원순의 손을 들어주며 정치일선에 등장한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는 '안철수= 좋은 사람'이 성립됐다. 그리고 그동안 불가의 스님들이 즐기는 선문답을 하듯 그는 정치판에 뜬금없는 화두를 던졌다. 예컨대 깨끗한 정치를 하자, 특정 진영논리에 얽메이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 안철수 현상은 구체제와 미래가치의 충돌이다 등이다. 가는 곳마다 옳은 이야기를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을 공유하듯 눈시울이 축축하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의 인성이 아니다. 대통령에 나선 자라면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국가권력의 운영과 정치적 실현 수단 통해 보여주는 일이 우선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치 쇄신도 그렇다. 진심이 가득담긴 그의 말 한마디는 썩은 정치에 백신이 되고도 남지만 실제 투약할 약은 아직 제조 방법도 만들지 않고 있다. 정당의 변화보다 더 혁신적인 것을 얘기하면서도 어떤 것이 변화며 혁신인지는 뒤로 감춘다.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면서 말만 던져놓고 어찌되는지 곁눈질만 하는 품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사람들이 그에게 방법을 물어보면 정색을 한 채 국민들에게 물어보란다.

 문재인은 어떤가. 그의 상징은 깨끗한 이미지다.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저축은행 문제에 개입했다는 풍설이 떠돌기는 하지만 문재인 하면 부정과 악수할 것 같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가 여전하다. 정치에서도 그는 민주당이라는 구악의 도포를 걸치고 있지만 여전히 정당정치에 깊이 빠져있지 않고 나름의 기존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평이다. 물론 문재인은 여전히 골수까지 스며들어 있는 친노 색깔과 참모 이미지는 핸디로 치부된다. 그래서 그에겐 안철수가 절실하다. 핸디를 감싸 안고 오히려 새로운 무기로 변모하게 만들 '정도령'이 필요하다. 가치와 철학이야 달라도 좋다. 백신을 잠시 빌려 문철수가 된다면 대권이 보인다. 그래서 통큰 양보를 뒷주머니에 찔러두고 다닌다. 언제든 어느 때든 '안재인'을 꿈꾸는 철수가 판을 벌이면 꺼내놓을 태세다. 문제는 '안재인'이든 '문철수'든 그 어떤 결론이든 단일화는 대권을 위한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문재인이 국민을 앞세우고 안철수가 아름다움을 덧붙여 오만가지 치장을 해도 역시 '문철수'와 '안재인'을 위한 한판 빅쇼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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