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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움직이자 '안재인'을 꿈꾸는 이들이 등을 돌렸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야기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단일화 작업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표면적인 이유는 세 가지다. 공작정치와 인신공격 합의정신 위배 등이다. 하지만 문철수나 안재인이 단일화 협상을 벌이는 곳은 정치판이다. 아무리 미화하고 세탁하고 분칠을 해도 정치판의 신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세 가지 위배사안을 들고 나온 안철수 캠프의 단일화 협상 중단 명분은 초라해 보인다.

 당장 안달이 난 쪽은 문재인 캠프다. 부산 부전시장 좌판에서 단일화 중단 소식을 들은 문재인이 다음날 아침 안철수에 전화를 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안 후보 측에 부담을 주거나 자극한 일이 있었다면 대신 사과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안철수 후보의 반응은 냉랭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지만 니가 토라졌으니 사과할게'라는 수준으로 들린 모양이다. 무엇보다 사태가 이처럼 험악하게 돌아 간 것은 '안철수 양보론'이 고개를 들면서부터다. 출마 직후부터 '아름다운 단일화'는 곧 '아름다운 양보' 로 이어질 것을 희망했던 문재인 캠프는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설마' 단일화가 깨지기야 하겠냐는 태도다.

 문제는 안 후보 측이 받아들이는 '안철수 양보론'에 대한 입장이다. 안 후보 측은 지난 6일 문·안 후보의 첫 단독 회동 이후 문 후보 측 일부 관계자들의 '안철수 양보론' 언급을 일부 언론이 보도한 데 대해 즉각 대응했다. 단일화 논의를 기피했던 안 후보가 회동에서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수용한 이유는 문 후보에게 양보하고 차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여론과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에 편승한 문 후보 측은 최대한 양보론이 빨리 퍼지길 원했다. 그래서 안 후보측은 지금 실시간으로 퍼지는 양보론이 '저쪽'에서 흘리는 전략적이자 조직적인 음모로 규정한다. 실제로 양보론이 퍼지면서 안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졌고 문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망은 대부분 '불화설' 수준이다. 이만한 사안이 이혼법정으로 갈 사안은 아니라는 전망이다. 과연 그럴까. 치킨게임을 원하지 않는 야권은 '비온 뒤 더욱 단단한 땅'이 될 것이길 희망하지만 문제는 신뢰다.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는 떠도는 말이나 돌발적인 상황에 의연하다. 토라지고 얼굴 붉히다 맞고함이 오가는 상황은 상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발은 작은 오해일지라도 고성과 욕설이 뒤섞여 결국 멱살잡이로 이어지는 것은 모두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보론이 그렇다. 꼭 1년 전, 수행자처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배낭하나 메고 나타난 박원순을 끌어안은 사람이 안철수다. 그 장면을 기억하는 문재인 후보측은 바로 그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 뭐든 내주고 뭐든 양보하더라도 결국엔 여론조사나 경선이 아니라 부둥켜안고 환한 웃음지어 보일 사람이 안철수라고 생각하기에 정치쇄신이든 기득권 내려놓기든 어떤 문제라도 테이블 위에 올리자고 주문했다.

 문제는 빗나간 예측이다. 박원순식 단일화를 그렸던 문재인 캠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은 그림일 뿐, 당사자인 안철수가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포옹은커녕, 눈빛이 달라졌다. 사과 전화에도 냉기만 흐르고 '가시적인 조치'만 주문한다. 마음 같아서는 쏘아붙이고 싶지만 그를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무섭다. 박근혜와의 일전을 위해서는 무조건 안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의 포옹 없는 전투는 아무래도 승산이 없다. 중도를 끌어안고, 2030 젊은 세대를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토라진 그의 손을 잡아야 한다. 문재인의 고민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주말이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조국 교수를 비롯한 지원군들의 사격이 시작될 게 분명하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 두 사람의 포옹을 외칠 든든한 지원군이 버티고 있다. 그 지원군이 누구인가. '미친 소'를 들쳐 업고 FTA를 불태우고 강정마을 앞에서 드러누운 전사들이다. 무균질의 안철수가 문재인의 손목은 뿌리쳐도 절대로 그들의 촛불을 '훅'불어 끌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문재인 캠프는 여유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청와대를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번쯤 토라져야 드라마 아닌가. 그래야 반전이 가능하고 등 돌린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오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만약, 안철수가 그들의 생각처럼 무균질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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