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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항.


1년 전부터 강동바다는 지친 마음의 안식처였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하면 강동으로 갔고, 마음이 울적할 때도 강동을 찾아갔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그러고보면 늘 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북구청에서 강동동으로 방면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타고 강동동에 도착하면 강동파출소가 보이는데, 이 곳을 기준으로 왼쪽, 즉 경주방면으로의 바다만을 찾아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곳이 더욱 조용해 보였다.


# 귀신고래등대·먹거리 가득한 '정자항'
지난 27일은 반대쪽으로 운전대를 돌려봤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정자항. 이 곳은 12월이면 정자대게를 맛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활어직판장에서 파는 가자미회 역시 맛이 일품. 대표적으로 알려져있는 먹거리가 집중해 있어 강동하면 '정자항'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빨간색과 회색빛의 '귀신고래등대' 조형물도 설치 돼 있어 관광명소로는 제격이다. 이 두 고래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산책로다. 굳이 '해안산책로'라고 이름 짓지는 않았지만 정자항에서 판지수산물구이단지로 향하는 길로 빠지면 2차선 도로가 깔끔하게 닦여있다. 차를 타고 가는 것 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한다. 워낙 차가 다니지 않아 도로의 역할보다는 도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보같은 도로에서는 정자항의 모습을 한 눈에 내다볼 수 있다. 정자항 안에서 보는 항구는 좁아보였는데, 이 곳에서는 마치 광곽렌즈에 풍경을 담은 것 처럼 정자항이 드넓어보인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작가급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찰칵찰칵' 마주보고 있는 두 귀신고래와 짙은 강동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왁자지껄한 정자항과는 달리, 인적이 없어 나만의 장소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다. 해안가에 앉아 쉬던 갈매기들도 환영의 군무를 선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행복이 이런 것인가 보다.

# 항구안의 또 다른 항구 '판지항'

   
▲ 판지항.
정자항에서 판지항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곽암', 미역바위를 볼 수 있다. 해안가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높은 파도가 곽암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자아낸다. 자세히 지켜보지 않으면 곽암을 볼 수 없다. 그저 바다 중간에 하얀 포말이 생기면 그 위치인가보다 하고 짐작할 수 밖에 없다.


 곽암은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 크게 공을 세운 박윤웅에게 하사한 바위다. 양반돌 또는 박윤웅돌이라 불리는 바위는 미역 생산과 관계가 깊어 울산시기념물로 지정됐다. 곽암이 정면으로 보이는 바닷가에는 박윤웅에 대한 기록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강동 바다에는 이런 곽암이 곳곳에 있는데, 과거에는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미역을 채취해 말리고, 판매하며 수익을 나눴다. 요즘들어서는 그런 곳이 잘 없지만, 아랫마을인 제전마을에서는 매년 4월마다 이런 방식으로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곽암에서 판지항쪽으로 좀 더 걸으면 '장끗'을 알리는 강동사랑길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눈 길을돌리면 보이는 곳이 판지항이다. 항구라고 하기엔 소박한 크기지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항구의 역할을 굳건히 해 온 판지마을의 든든한 동반자다.


 판지항에서 찾은 매력은 바위자락에 부딪히는 높은 파도의 절경이었다. 동해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판지항은 뭔가 달랐다. 항구 안에 또 다른 항구가 있다할까. 적당한 높이의 바위들이 둥그렇게 모여 파도를 온 몸으로 안고 있었다. 한 없이 높고 거친 파도가 바위와 부딪혀 절경을 이뤄냈다. 이 절경은 정자오피스텔 건물 아래에서 가장 자세히 볼 수 있다.


 정자항에서 대게와 가자미회를 맛봤다면, 판지항에서는 여러 가지 조개류와 장어구이를 음미할 수 있다. 판지수산물구이단지가 조성 돼 있을 정도로 갖가지 구이류가 관광객의 입맛을 자극한다.
 
# 대나무숲 낀 '제전항'·이일송-바다 풍경 일품 '우가항'

   
▲ 피노키오벤치와 이일송이 있는 우가항 옆 금실정.
다음으로 발걸음이 향한 곳은 제전마을이다. 북구의 마을기업 1호점인 '사랑길 제전장어'로도 이미 유명세를 타 제전마을 하면 '장어'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것이 자가용을 타고 제전마을 입구로 들어오면 길고 긴 장어가 사람을 반긴다. 진짜 장어는 아니고, 가드레일에 새긴 장어 두마리다.


 지난해에 이어 1년만에 찾은 제전마을은 조금 변해있었다. 추가 지원금을 받아 마을기업도 확장했다.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으로 한 층 더 발전한 것이다.


 제전항을 거쳐 우가항으로 가는 길에서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제전항을 끼고 있는 마을 뒤편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대나무 숲이 울창하게 조성돼 있었다. 겨울철이라 쪽빛 대나무 숲은 볼 수 없었지만, 가느다랗고 길게 뻗은 대나무들이 주민들을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응당 그만한 이유가 있는가 보다. 항구에 마을이 들어서는 것은 항구로 인해 파도가 약해지기 때문인데, 이 곳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대나무도 함께 있었기에 과거 마을이 부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전항에서부터 우가항까지는 걷기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차를 타고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해안가를 통해 걸으면 20분 정도 걸어야한다.


   
▲ 제전항.
 그만큼 우가항은 볼거리가 많고, 가족, 연인들이 산책하기에는 적당한 곳이다.


 우선, 두 나무가 만나 딱 붙어 있는 '이일송'이 있는 금실정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짙은 초록빛의 소나무와 짙은 동해바다가 만나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거기다 나무로 만든 피노키오 벤치는 아기자기하게 사진도 찍기에 좋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혼자 우두커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는 피노키오가 왠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피노키오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누군가 옆에 앉기만 한다면 쓸쓸함은 바닷바람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본 세 곳의 포구 중 가장 아담하고 아름다웠던 곳은 우가항이라고 꼽고 싶다. 금실정에서 우가항을 내려다보면 둥그런 항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작지만 제 역할을 다 하는 포구다. 항구는 조업에 지친 선박들을 감싸주는 어머니와 닮았다고들 하는데, 우가항은 특히 그런 것 같았다. 바른 동그라미를 보면 모진 마음도 사라지듯, 동그랗게 들어선 우가항에서는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낚시공원 조성공사 한창 '당사항'

   
▲ 당사항. 한창 조성공사가 진행 중인 당사항낚시공원의 모습도 보인다.
혼자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다면 당사항을 추천하고 싶다. 당사항은 지금 당사해양낚시공원 조성사업이 한창이지만, 그리 시끄럽지도 않다. 더욱이 홀로 산책이 더 잘어울리는 이유는 다른 항구보다 잔잔한 파도가 치기 때문이다. 그를 증명해주는 것이 자그마한 바윗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갈매기의 모습이다. 아무리 파도가 친다한들, 미동도 없이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정자항에서 만난 갈매기떼는 카메라 셔터소리에 놀라 날아가기도 했는데, 이 갈매기는 폼생폼사다. 사진을 몇 번을 찍어대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앉아 있다. 동물도 조용한 이 곳이 사색을 하기엔 적당한 곳으로 생각하나 보다.


 저 멀리에는 당사항낚시공원 조성 공사 현장이 보였다. 마을에서부터 바다까지 다리를 연결했는데, 노란색 아치형 다리가 푸른 바다색과 조화를 이룬다. 이 곳 공사가 다 완료되고나면 당사항도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마을 인근 포구 앞은 조용히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유지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섯 항구를 걸어서 모두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 두 시간이 걸린다. 해안산책로처럼 깔끔하게 데크가 조성돼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의 길이 닦여있다. 이 구간에는 강동사랑길 코스도 포함 돼 있어 어느정도 산책이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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