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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근 시인

토막 살인 영화에 나오는
발동기를 단 톱날이
오동나무의 밑둥치를 파고든다
이쪽 나이테에서 몸의 중심을 지나
반대편 나이테에 이르자
소처럼 한 번 울고 오동나무는 무너졌다
 
톱날이 뱉어낸 오동나무의 살과 피가
사방으로 튀며 화면을 흥건히 적시는 동안
아직 자신의 부음을 받지 못한 가지들은
쓰러진 후에도 여전히 그 넓고 푸른 이파리와
보랏빛 꽃들을 달고 있다
오동나무 더딘 죽음의 파문이
가지 끝에 다다르기까지는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이 걸릴지 모른다
 
몇 토막으로 잘린 오동나무의 몸은
누군가의 방에서 오랫동안 썩기 위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너무 더딘 삶이었으므로
오동나무
지금부터 죽으러 간다

■ 소처럼 한 번 울고 오동나무는 무너졌다. 그러나 오동나무의 죽음은 더디다. 톱날에 잘려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은 오동나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상상력이 시를 성립시키는 요인이다. 톱날이 뱉어낸 오동나무의 살과 피가/ 사방으로 튀며 화면을 흥건히 적시는 동안/ 아직 자신의 부음을 받지 못한 가지들은/ 쓰러진 후에도 여전히 그 넓고 푸른 이파리와/ 보랏빛 꽃들을 달고 있다. 오동나무의 죽음에 대한 2연 전체의 체험적 진술이 너무나 섬세하고 생생하다. 이것이 이 시를 시적이게 하는 표현이다.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오동나무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동나무/ 지금부터 죽으러 간다'란 표현에는 죽음에 대한 한없는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오동나무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새로운 생애의 시작으로 읽힌다.  성환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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