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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들이 하늘을 높이 날아 다음 서식지로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날 때의 풍경을 얼마전 TV로 본 적이 있다. 이들이 삼각 대열로 나란히 종횡으로 줄지어 서 높이 나른다. 가장 앞서 가던 첫 기러기는 바람을 가르며 목적하는 방향을 잡아가며 날아간다. 제 2편대로 비행중인 바로 뒤 두 마리의 기러기는 몰아쳐 부는 바람을 가장 극심하게 받지만 꾹! 참으며 뒤로 갈 수록 동료들이 바람을 맞는 충격이 덜 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달려 간다. 그러다가 낙오새가 발생하면 전체 대열의 비행을 깨고 안착해 병든 그 새 한 마리를 위해 수 십 마리의 기러기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간호하며 보살핀다. 결국 아픈 새가 다 나은 후에야 함께 대열을 정리해 다시 가던 길을 향해 떠나는 기러기떼들의 모습을 보고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얼마전 부산공연을 끝내고 울산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에 잠깐 들렀다. 깨끗하게 진열된 항아리들을 구경하면서 가격표를 보고는 망설이다 돌아서 나오는데 아궁이 옆에 귀퉁이가 조금 깨어진채 버려진 작은 항아리 하나가 비에 젖는채 있었다. 처음에는 온전한 항아리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 그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니 괜시리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줌마!~이 깨진 항아리는 얼마에 파십니꺼?" 하니 인심 좋게도 "허허 그거요? 마!~ 그냥 가져 가이소!"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은 미안해 하다가 이거 왠 떡이냐며 차에 싣고 집으로 가져오니 아내가 요리조리 깨끗하게 닦더니 그동안 처치 곤란였던 식물을 옮겨 심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온전한 화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아내와 난 작은 기쁨을 주는 새 식구가 생긴 것이 신기하고 이뻐서 한참을 웃으며 바라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깨어진 항아리 조각도 이쁜 집 꾸미기 소품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 말이다. 깨지고 버려진 항아리 조각 조차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귀하게 다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그 깨어진 토기 조각에게 오히려 감사했던 하루였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계는 극좌, 극우파가 첨예하게 대립해 전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 후, 60여년이 지나 민주주의 정치가 어느정도 확립되었다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천민 자본주의 근성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모두가 부자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과 부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자와 쪽방촌에 살며 오늘 하루도 겨우 노숙하듯 연명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있다. 다양하지만 불합리하며 모순된 군상들이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최첨단의 21세기를 사는 이 작은 지구별 안에 오늘 이 순간에도 공존하고 있다.

 기러기들도 자연 질서에 순종해 서로 협력하며 산다. 하물며 만물 중에 가장 귀한 피조물인 우리가 어찌 기러기떼들의 사랑과 우정, 인내와 협력 보다 못하다면 부끄런 일 아닌가? 대통령 선거 운동이 막바지에 이르자 서로를 향한 흑색선전과 비방이 거세져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이 있다. 깨지고 상처난 가운데지만 이제 서로 모든 것을 내려놓자. 그리고 정치권은 겸허한 마음으로 낮아지고 또 낮아져 국민들이 소리없는 침묵으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함께 높이 날며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의 여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시절 무능하고 부패한 위정자들로 인해 깨어져 버려진 토기조각 같은 상처난 국민들의 마음을 이제는 하나로 보듬어 안아 화합해가야 할 시점이다.

 바로 코앞인 대통령 선거에 올바른 결과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 간절하다. 그 간절한 마음의 진의를 결국 외면치 않는 거짓없는 대통령 후보들 되길 바란다. 결코 배신 당하지 않을 그 정직한 믿음에 한 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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