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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과 시작을 세모와 세시라 부른다. 언뜻 보면 단순히 끝과 시작으로 보이지만, 의미로 들여다보면 끝과 어둠, 시작과 밝음이 묶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밝음과 어둠, 시작과 끝은 일출의 해가 중천을 거쳐 일몰로 마감하는 것과 초승달이 보름을 지나 칠흑의 그믐에 닿는 자연현상이 적합한 사례로 생각된다. 조상들은 이러한 끝과 시작, 어둠과 밝음에 따라 보냄과 벽사, 환영과 진경 등의 의미를 둔 민속놀이를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행해왔다. 그 대표적 행사가 세모의 나례와, 세시의 등궐살이이다. 나례는 송구와 축귀의 의미가 포함되기 때문에 어둠의 절정인 섣달그믐에, 등궐살이는 살이의 의식을 통한 영신이기 때문에 밝음의 극치인 정월 대보름에 각각 행한다. 나례가 왕실의 안녕을 위해 주로 궁궐에서 전문 예인에 의해 행해졌다. 대표적 궁중무용이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이다. 등궐살이는 주로 민가에서 마을 공동체 안녕을 위해 행해졌다.

 나례는 구나(驅儺)로 역귀를 쫓는 의식인 만큼 붉은 옷에 가면을 쓴 악공과 창을 든 4명의 사목방상씨 등 여러 명이 참여한다. 창사인 악공은 열 두지신의 역할을 가창하며 모두 속히 떠날 것을 "급급여율령사바하"라는 주문으로 마무리 한다. 벽사(闢邪), 축귀(逐鬼), 매귀(埋鬼) 등은 모두 나례의 용어로 방법에 따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쫓으며, 묻어버리는 것이다. 나례는 중국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세한 것은 용재총화(傭齋叢話).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서 참고하길 권한다.

 등궐살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울산만의 독특한 명칭의 민속의식이다. 흔히 등궐살이를 현상으로 달집살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본질은 그렇지 않다. 등궐살이는 울산지역 최초의 지리지<학성지(1749)〉풍속 조에 '매귀악'과 '등궐살(騰厥殺)'로 서술되어있다. 서술 내용대로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면되겠지만 일부 고문서 내용은 구전을 활자화, 문장화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구술자의 발음을 들은 기술자의 판단과 추정으로 기술하는 수가 많으며, 또한 그런 것도 우리말로 여실하게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한문으로 한문 투에 맞도록 서술도 하고 기술도 한 실례가 지적되고 있는 측면에서 맹목적으로 앞의 자취를 따르기가 주저해진다. 그러므로 필자는 평소 마음에 품은 학성지의 등궐살이에 대한 생각 네 가지를 말하고자한다.

 첫째, 등궐살은 단순히 나뭇등걸(=울산 방언 까둥구리)을 태우는 달집태우기 행사가 아니다.
 학성지에서 등궐살은 "등궐살(騰厥殺)이라고도 하는데 방언(方言)에서 사목(査木)을 등궐(騰厥)이라고 부르고, 태우는 것을 사른다고 하므로 지경(地境) 안에서는 모두 그러하다." 한 것은 그 본질을 기록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등궐살은 달집태우기와는 차이가 있다. 달집살이에는 둥궐살이의 의미가 꼬리 붙어있지만, 달집태우기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그 이유는 권상일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했기 때문이다.
 둘째, '등궐살'에서 "……속되게 꾸짖는 말로 등광궐아 괘보살이라……."에서 "속되게 꾸짖는 말"로 해석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먼저 등광궐아 괘보살이 어떤 내용인지 밝혀야할 것이다.
 <악학궤범〉학연화대처용무합설조에는 악공이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上佛菩薩)"을 제성(齊聲)하며, 등궐살에서는 '등광궐아괘보살(騰光厥兒掛菩薩)'을 가사(呵辭)한다.
 궁중 연희의 기록은 의미와 한자 등이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되고 있으나, 마을에서는 의미와 한자가 등한시되어 구전으로 답습되는 과정에서 변천될 개연성이 있다.

 셋째, 매귀악과 등궐살이는 묶음이 아닌 각각의 민속놀이이다.
 중국 고대에서 동이(東夷)의 음악을 매악(?樂)으로 불렀다. 매악에는 붉음이 내포되어있으며, 붉음은 축귀와 벽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매악의 매자에 붉은 색을 의미하는 뜻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매귀(?鬼)는 매구(埋鬼), 매귀(煤鬼), 매귀(煤鬼) 등의 시원 형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등광궐아괘보살'은 '달집에 불이야'의 시원 형으로 볼 수 있다.
 달집에 불이야는 달집에 불이 붙은 현상을 그대로 외치는 것으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등궐살이는 등걸이 다 타도록 기다렸다가 등광궐아괘보살이라는 일곱자를 천천히 서로 부른다고 했다. 이는 달집이 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다 탄 잉걸불을 보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은 등광이 타인을 위한 어둠을 밝힌 선행을 칭송. 찬탄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울산만의 독창적 세시민속인 매귀악과 등궐살이는 지신밟기와 달집살이의 시원 형으로 볼 수 있기에 앞으로 명칭의 일관성, 연희방법의 독창성 등 울산것을 찾는 노력과 실천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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