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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내각 인선을 앞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대 탕평인사를 명분으로 한동안 '호남총리론'이 무성하다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지역성 배제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새 정부의 초대 총리는 중요한 자리다. 새 정부의 얼굴인 초대내각의 상징성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당선인의 복심을 읽을 수 있는 척도이기에 이목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경구처럼 오르내리는 시기이다보니 총리감으로 지목되는 인사들은 어지간하면 언론에 이름 석 자가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특종을 쫓는 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민감한 시기에 '함구령'을 내린 박근혜 당선인이 야속하기도 할 만한 일이지만 '고소영' '강부자'의 트라우마를 가진 여권의 입장에선 가능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싶을지 모른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 것도 답답할 정도로 정보를 주지 않는 당선인 쪽에 대한 언론의 야속함이 드러나는 현상일지 모른다. 언론은 연일 인수위와 당선인을 두고 '불통'을 이야기 하지만 말이 말을 낳아 망조가 든 사례를 너무나 잘 아는 박 당선인이 함구령을 풀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당선인의 이 같은 신중모드에 하마평에 오르내리거나 측근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행보도 조심스럽다. 당선인 주변인들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개국공신'의 마땅한 대접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자리보전도 어려울 것이 불 보듯 뻔 하기에 칩거와 배낭여행으로 연일 몸조심을 하고 있다.

 내각 인선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실, 새 정부의 조각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의 통치철학이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 잠시 경험한 청와대 안주인이 유용한 밑천은 될 수 있지만 난마처럼 얽힌 국내정치와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부채로 넘겨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는 가시밭길이다.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이 같은 대내외적인 부채보다 더 무거운 스스로에 대한 부채도 안고가야 한다. 바로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 약속 대통령이라는 부담이다. 본인이 원했든 아니든 박 당선인은 '원칙주의자'이자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다. 원칙이 바탕으로 깔리고 약속이 실천적 동력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마땅하지만 평가는 언제나 약속과 원칙이라는 어휘에 매몰돼 버린다.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 박 당선인은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박 당선인을 지도자로 원한 대다수 국민들은 원칙과 약속이라는 단어보다 스스로 원칙에 매몰되지 않는 지도자, 약속이 부담이 아니라 함께 맞춰가야 할 지향점으로 제시하는 지도자를 원했다고 본다. 원칙을 버리고 약속을 어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원칙과 약속을 신뢰의 끈으로 연결하는 목표점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공자다. 공자의 일생은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누구보다 스스로는 지도자에 대한 이론적 무장에 주력했던 인물이다. 어쩌면 '이상적 지도자상'을 만들고 이를 제시해 중용되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자는 50을 넘긴 나이에 '정치세일즈'에 나서 13년 동안 72명의 군주를 만나 자신이 그린 이상사회를 브리핑했지만 그때마다 홀대와 무시를 당해야 했다.

 팍팍한 현실 앞에 공자는 제자들을 향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는 명언으로 자위했지만 이 말 역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지도자들의 눈높이를 낮춰보려는 고도의 정치적 발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를 대하던 당대 지도자들이나 후대의 유학자들의 평가였다. 신분질서를 옹호하고 법과 예를 원칙으로 무장한 보수주의자로 공자를 그린 지도자는 공자를 보지 못했다. 이는 어쩌면 혼란의 시대였던 당대에 공자만큼 개혁적인 정신과 실천적인 철학을 가진 학자는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이 '공자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공자의 통치철학 때문이다. 공자가 지향했던 것은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로부터 시작하는 정치, 법과 제도보다 덕과 예로 펼치는 정치였다.

 새 정부 첫 내각 출범을 앞두고 웬 공자타령인가 싶겠지만 공자를 통해 읽어야 할 점은 분명하다. 바로 준비된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통치는 결코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이를 중용하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이다. 지금 박 당선인이 고민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분명한 것은 사람을 쓸 때의 철학이다. 정치에 대한 소신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바탕으로 깔린 인재를 찾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안목이 절대적이다. 연예인과 정치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천박한 입, 말로 정치를 하려는 위선적 입이 아니라 현장을 경험하고 인문학이 온몸에 녹아 있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세일즈'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제왕에게 그려 보이는 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도자를 희망하기에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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