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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운 남자가 있다. 위장전입에 불법증여는 기본이고 재벌 협찬지시나 권력에 줄서기는 의혹의 선을 넘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의 주인공인 이동흡 후보자 이야기다. 매일 같이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는 '절대'를 외치고 있다. 흠집내기와 신상 털기가 헌재소장의 낙마 요건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가. 요설 같은 지어내기 수준이라면 한두 가지면 충분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은 요설이 아니라 삶의 궤적이다.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등장하는 위장전입은 기본 메뉴가 됐고 논문표절·불법증여는 기본 옵션으로 따라붙을 정도다.

 헌법재판소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법적으로는 위헌법률 헌법소원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 등 헌법과 헌법에 따른 국가기관을 수호하는 심판을 책임지는 자리다. 이 후보자는 이 같은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헌재소장에 대해 '신상 털기'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정치공세'라고 이야기 한다. 재판관으로서 자신의 삶에 한 오라기 부끄러움이 없는데 왜 모함과 여론재판으로 인신공격을 하느냐고 정색이다. 재판관은 재판의 기록으로 말하고 교수는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업적으로 말하면 된다는 논리다. 어떻게 오른 자린데 새치 혀가 무서워 내려올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한 번 해보자는 식이다. 하기야 시궁창 바닥까지 간 이들도 공직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마당에 대부분 감추고 있는 부끄러운 과거에 발목 잡힐 순 없다는 항변같이 들린다. 

 참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 정의는 사라졌다. 한 때 열광이라 불릴 만큼 유행했던 '정의란 무엇인가'는 실종된 정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부재와 결핍의 정의는 담론만 무성한 채 결론 없는 화두만 던진 꼴이 됐다. 자격 시비나 도덕성 문제는 결국 '게임의 규칙'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정해진 규칙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진지한 질문이기도 하다. 돌려서 이야기 하자면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 없거나 아니면 그 규칙이 누군가에게만 유리하도록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라는 말이다. 도덕적 흠결이나 편법이나 불법 문제를 이야기 하면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선은 절대적 기준의 선과 다를 수 있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보편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마땅하다.

 의혹의 당사자인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의 문제는 그래서 심각하다. 위장전입이나 불법증여 등 지금까지 제기된 이 후보자의 비리 의혹은 상상을 초월한다. 새롭게 제기된 외화 불법송금 의혹에다 해외출장 비행기 표 차액 챙기기 논란, 수원지법 재직 당시 송년회에 재벌의 협찬을 주문한 것과 정치 후원금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여권은 의혹의 뿌리를 보지 못한 채 '정치공세'만 이야기 한다. 이 후보자가 TK(대구·경북) 출신이고 우파 성향을 보여 왔다는 점, 헌법재판소내 이해관계와 새 정부 출범과 연계된 국정주도권 신경전 등이 야권의 '이동흡 흠집 내기'의 배경이라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측은 실제로 "야당이 제기한 의혹 자체가 헌법재판소장직을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흠이라 보다 이 후보자에 대한 '망신주기' 성격이 강하다"며 "여러 의혹에 대한 야당의 입증, 이 후보자의 해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망신주기라고 주장한다면 망신을 당할 문제를 가진 후보자를 임명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쯤에서 머리 한번 흔들고 제대로 바라볼 대목이 있다. 막말판사 이야기가 회자되고 추문검사와 뇌물검사에 벤츠 변호사까지 입방아에 오르면서 법조 3륜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다고 우리는 법조계를 지키는 청렴하고 강직한 법관이나 검사까지 욕먹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상국가 이거나 도덕국가가 아닌데 도덕적 기준과 청렴을 그들에게 완장으로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돌연변이 같은 일부의 법조계 인사가 저지른 추문이 묻힐 수 있는 것은 법조계의 뿌리가 여전히 건강할 때 가능하다. 수장의 자리에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고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기준이 무너진다면 너도나도 '헌재소장 감'이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은 개나 소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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