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지난 유년시절을 지내오며 성장하는 과정 중에 상처를 주고 받으며 어른이 된 지금도 살아 가고 있다. 또한 이 상처들은 우리 영혼 가운데 깊은 상채기로 남아 여전히 숙성되고 있다. 이 상흔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들로 그 독소를 표출하기 마련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여전히 죄를 반복해 짓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외면은 밝게 웃고 있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결점들에 대한 미움 섞인 연민과 지난 상처들로부터 여전히 치유 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 연약한 자신의 자괴감과 두려움등이 때론 일상 속에서 적절치 못한 방어기제로 툭툭 튀어나와 또다른 모양의 상처를 낳고 있다. 마치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맑아 보였던 유리잔 속의 물이 잔을 흔들자마자 아래 가라앉아 있던 시커먼 것들이 제 본색을 드러내며 소용돌이 치듯이 말이다. 이 내면 깊숙이 자신만이 알도록 꼭꼭 숨겨 놓은 사람의 마음은 망치나 곡괭이로는 결코 끄집어 낼 수 없다. 상처 받은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게 해 아무리 지독한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특효약은 결국 사랑밖에 없다. 상처투성이로 강퍅해진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끄집어 내게 하고 용서를 통한 치유 회복의 극처방약은 다시 끌어안는 사랑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은 폭력이 뒤섞인 불타는 미움과 증오보다 더 뜨겁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지난 일요일 성남동 중앙 소공연장에서 막을 내린 극단 물의 진화의 연극, 배봉기 작. 이청언 연출의 '사랑이 온다'를 관람했다면 폭력과 사랑의 대칭 관계가 용서와 화합으로 전환되는 오묘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소년시절부터 아버지(황병윤 역)의 거친 폭력에 시달려 결국 15세때 가출을 하고 고리 대금업의 수금자로 폭력을 일삼는 인생을 사는 아들(김영삼 역)은 폭력이 낳은 이 시대의 또다른 사생아다. 아들은 자신이 폭력으로 받은 깊은 상채기를 문란한 여성 편력으로 치유 받고자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마취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장기를 빼내는 잔인한 폭력을 가한 마지막 여인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유년기때 받은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받게 된다. 이 폭력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주는 이단성이 아이러니하다. 자신이 가한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여인(전언미 역)을 향한 절규어린 사랑의 맹세는 순교자적일 만큼 의연하고도 처절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비로소 그에게 폭력보다 더 강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헤피엔딩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노부모의 자살 장면은 다소 작가의 억지구성이 아니었나는 아쉬움을 갖게 했다. 천하 부귀영화를 다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가장 소중한 것이 제 목숨 아닌가? 청소년들과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관극하는 연극무대에서 시커먼 비닐 봉지를 덮어 쓰고 노부모가 타살과 자살을 재연하는 장면은 썩 달갑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의 암전후에도 선뜻 박수를 치지 못하는 관객들의 씁쓸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같은 연극인인 나 역시 괜시리 안타까웠다. 그러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난무하는 작금의 시대상에 종지부를 찍자는 듯 울리는 작가와 연출의 경종이라 재해석하며 객석에서 일어났다.

 새해들어서도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분야가 녹록치 않은 현실임에도 굴하지 않고 울산 물의 진화 극단이 올해 첫 공연을 열었다. 모든 공연 예술인들이 가져야할 소명이 있다. 그것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것을 혼탁하게 하고 불의를 조장하는 사회악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서적 정화운동을 질 좋은 예술 공연을 통해 승화시키기 위한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며 외로운 가시밭 길을 걸어가는 선구자가 바로 순수 공연 예술인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늘 사회와 함께 깨어 있음으로 사회 문화를 이끄는 전투사들이다. 이것이 문화 예술인들이 가져야 할 멋이며 자존심이다. 새해 첫 막을 연 극단 물의 진화의 건승을 빈다. 

 필자가 태어난 고향 성남동 일대는 지금 문화의 거리 조성으로 한창이다. 몇 년전 구, 시민극장을 개조한 울산 중앙 소공연장 개관이후로 최근 극단 푸른가시 소극장 개관까지 이어져 총 네 곳의 공연장이 들어 서 있다. 중구 성남동 일대가 그야말로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 공연의 거리이자 메카가 돼가는 것에 손색이 없길 바란다. 실속있는 중구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