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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천주교 박해 피한 산중은신처 '공소'
살티·간월·대재공소 등 영남알프스 곳곳 산재
언양성당, 성지 정비·신앙유물전시관 개관 등
천주교 부흥 이끈 중심지 역할 오롯이 해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양각한 조각석들로 둘러쌓인 '갈티 천주교성지'. 이곳에는 경신박해 때 언양에서 체포돼 한양에서 취조를 받은 후 30일을 걸어 언양까지 와 며칠만에 숨진 김영제(베드로)와 김아가다의 묘, 그리고 이 지역에서 활동한 천주교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이창균기자 photo@

#언양에도 한국판 '카타콤베'
로마주변에 산재한 지하무덤 중 상카리노 카타콤베는 지하 4층 20미터 총길이 20킬로미터 총 4만 평의 지하무덤이다. 이 곳은 죽음과 삶의 공존을 경험할 수 있는 성지순례지로 로마의 소중한 자산이다.
 울주군 언양도 한국판 '카타콤베'가 산재해 있다. 언양에는 19세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전국의 신자들이 들어와 은거와 예배장소로 활용했던 산중 공소(公所)가 곳곳에 남아있다. 지난 86년 16개 공소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들 공소가 위치한곳은 해발 1,000m 이상의 간월·가지·신불·고헌·천황산 등 '영남의 알프스'산악지대 일대다.

 
#애환어린 신앙생활 발자취 고스란히
언양 석남사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는 살티공소는 세례명이 베드로인 김영제(1827∼1875)가 신앙생활을 마감한 곳이다. 그는 경신박해 때 언양에서 체포돼 감영을 거쳐 한양에서 취조를 받고 석방된 뒤 온몸에 장독이 오른 상태로 30여 일을 걸어 가족이 있는 언양에 도착했으나 며칠 만에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티공소에서 마을 길을 따라 300여미터 오르면 최근에 조성한 '성지'가 있다. 김영제의 묘와 간월산 계곡에 있는 간월공소에서 4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앙에 헌신한 동정녀 김아가다(1815∼1860)의 묘소가 함께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울주군 이천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대재공소는 죽림굴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공소다. 너비 4m, 높이 1.5m인 좁은 입구 때문에 바깥에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굴안쪽은 길이 40m, 너비 15∼20m, 높이 3∼4m로 많게는 150명까지 안에 들어가 지낼 수 있는 천연석굴이다.
 신자들은 이 곳에서 질그릇과 목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바깥정세를 살피다가 포졸이 나타나면 굴안에 은신한 뒤 연기가 나지 않도록 곡식을 물에 불려 먹으며 몇날 몇달을 숨어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갈티마을에 조성된 순교성지 표지석.

 또 중국에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세례를 받은 최양섭 신부가 1860년 100여 명의 신도와 함께 4개월동안 굴속에서 미사를 집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천황산 기슭에 있는 범굴은 무오박해(1868) 때 울산 병영에서 순교한 허인백(야고보)·이양등(베드로)·김종륜(루까)과 이들의 가족들이 대재공소에서 피신해 살았던 곳으로 30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석굴이다.
 범굴을 중심으로 동쪽은 죽림굴, 남쪽은 삼랑진, 서쪽은 정승골, 북쪽은 얼음골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헌산 자락의 소호·미호공소를 비롯해 두서면 내와리 탑골공소 등에도 애환어린 신앙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천주교 언양성당은 이들 공소를 새로 정비하고, 당시 신자들이 쓰던 생활집기와 서철, 교리 등이 담긴 각종 고서, 선조들의 민속품 등을 전시하는 신앙유물전시관도 세웠다.


#울산지역 최초 천주교 성당인 언양성당

산중 공소에서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신자들이 세운 언양성당은 1936년 울산 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다. 본관은 고딕식 2층의 석조 건물로 맞배지붕이며, 사제관은 단층으로 본당과 형태가 같다. 서울 명동성당을 건축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공사를 맡았는데 정면과 측면은 석재로 마감한 반면 뒷면은 붉은색 벽돌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본당은 건축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제관은 1990년에 개조해 신앙유물전시관으로 만들어 성물, 기독교 서적, 옛 서류 등 약 74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구에서 들어온 종교 시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종교적·역사적 가치가 크다.
 

   
언양성당 입구.


#언양지역 양반들, 천주교 수용에 앞장
우리나라 천주교는 17세기 중반 서적을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수용되었다. 이후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이벽 등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신앙모임이 1785년 적발되고, 천주교가 남녀ㆍ귀천을 무시하고 무군무부(無君無父)한다는 이유로 금지령이 내려졌다.
 1791년 윤지충의 제사 거부 사건으로 인해 천주교 박해는 가시화되었다. 이후 1801년(신유박해)에 최초의 전국적인 박해가 일어났고,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5년)로 또 다시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다. 1866년(병인박해)에는 최대 규모의 박해가 일어나 절정에 이르렀다.
 

 언양에 천주교가 처음 수용된 시기는 영남 지역에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훨씬 이전이다. 언양에서는 지역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양반들이 천주교 수용에 앞장섰다. 특히 노론계 양반인 창녕 성씨와 중앙에 있는 남인 지식인들과의 당색을 뛰어넘은 교류나 다른 지역에서는 천주교 배척에 앞장섰던 향리들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수용하는 모습은 언양 지역 천주교의 특징이다.
 학문적 관심에서 시작하여 신앙으로 천주교를 전파하는 이들의 자발적 노력은 이후 언양 지역에 천주교가 정착하고 확산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언양이나 인근으로 유배 와서 천주교를 전래하고 열심히 전교했던 중인 김범우와 강이문의 활동도 언양에서 이른 시기에 천주교가 수용되고 확산되는데 기여했다.
 

#피신 신자들, 언양서 교우촌 형성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자들은 더욱더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언양은 그들에게 마지막 피난처가 되었다.
 언양 지역은 신유박해(1801)로 언양 지역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오한우가 순교하고, 김교희가 간월산으로 피신하여 첫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경상도 각 지역에서 모여든 천주교 신자들로 많은 교우촌들이 만들어졌다.
 산속에 세운 새로운 신앙공동체인 언양 교우촌의 하루는 아침기도로 시작해서 마감기도로 끝이 났다. 함께 모여 길쌈을 하거나, 짚을 짤 때면 신자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교리를 배웠고, 때로는 천주가사를 읊으며 교리를 익히기도 했다. 
 

   
갈티공소 내부.

 1886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자 산 속에 숨어살던 천주교 신자들은 마을로 내려왔으며, 초기 신자들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서 점차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12월, 언양 본당은 부산진 본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여 독립하였다.
 초대 본당 신부로는 에밀 보드뱅 정신부가 부임했다. 본당이 창설되고 담당 신부가 내정되자 언양의 천주교 신자들은 자발적인 단체를 조직하고 새로운 성당 건립을 준비하였다. 6년의 공사 끝에 정신부가 직접 설계한 언양 성당은 고딕식 형태로 제작된 부산교구 유일의 석조 건물로 탄생했다. 글=강정원기자 mikang@


# '천주교의 큰 빛, 언양' 특별전 여는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 인터뷰


"종교넘어 서울산 지역사연구 새로운 장으로"

   
신형석 관장.

한국 천주교사에 뚜렷한 궤적을 남긴 언양지역 천주교 역사와 문화상을 조명하는  특별전 '천주교의 큰 빛, 언양 - 구원을 찾아온 길'이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오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마련된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전시는 △대항해 시대, 동아시아 천주교를 만나다 △조선의 백성, 피안과 구원의 가시밭길 △언양, 천주교의 큰 빛 △산 속의 새로운 신앙공동체, 언양의 교우촌 △신앙의 자유 등으로 구성됐다.
 특별전을 준비한 대곡박물관 신형석 관장은 "종교차원을 넘어 서울산 지역사 연구의 새 길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별전을 기획한 계기는
언양 지역은 조선시대 언양현으로, 울산과는 별개 고을로 존속하다가 지난 1914년에야 울산군에 통합된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서부 울산지역은 울산광역시 안에서도 특징적인 역사문화상을 갖고 있다. 특히 천주교 수용, 신자촌 형성, 성당 건립 등에 있어서도 특징적인 면이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천주교사에서 의미 있는 언양지역 천주교 관련 자료를 관람하면서 지역문화의 다양성에 관심을 갖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어떤 유물이 전시되는가
언양지역 천주교 수용과 순교에 관련된 자료와 각종 천주교 교리서, 박해 관련자료, 언양현 호적대장(울산시 유형문화재 제9호) 등 유물 78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부산교회사연구소, 언양성당, 오륜대 순교자박물관, 관덕정 순교자기념관, 호남교회사연구소 등에서 유물을 대여했다.

△특별전의 기대효과는
이번 특별전은 전국 천주교계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자생적으로 천주교가 부흥을 이룬 나라다. 그 중심이 언양이다. 단순한 종교 유물전이 아니라 지역사 관점에서 접근 하면 엄청난 일이다. 울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맛깔스럽게 전시 밥상을 차려, 관람객들이 와서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발전방안이 있다면
서부 울산의 영남알프스를 품고 있는 언양, 두동, 두서의 문화를 조명하는 것이 대곡박물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지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언양의 천주교를 조명하는 것은 서울산의 지역사 연구의 길을 제시해 주는 작업이다. 천주교계와 연결하고, 순례길을  관광 상품화시키는 일을 지자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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