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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오전, 외근을 나갔던 여직원이 들어와서 흥분 된 어조로 말문을 연다.평소에 침착한 여직원이라 뭔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한다.

 외근 중에 기부하겠다는 연락을 받아 다행이 인근이기에 기부자를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나보니 적은 금액도 아니고 5,000만원이란 큰 금액을 이미 모금회로 입금한 후 였다는 것이다.

 기부사연 등에 대한 자세한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못해 인적사항 등 간단한 정보만 얻고 돌아 왔단다.

 10년이 넘도록 이일을 한 나는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받아온 명함을 들고 바로 기부자와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오후에 만나 뵙자고 하였더니 허락해 주셨다.몇가지 드릴 작은 선물과 모금회를 알릴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하여 직원과 함께 기부자가 계신 작업현장으로 향했다.혹시 몰라 출발전 해당기업의 관리부서 부서장에게 통화를 드렸더니 그들도 처음 듣는 일이라며 함께 만나자고 하였다.

 정말 뜻밖이었다.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안전모, 덥수룩한 전형적인 산업현장의 근로자 모습이었다.함께 감사인사를 나누고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하나하나 여쭈어 보았다.우선 어떻게 큰 성금을 기탁하실 결정을 하셨는지가 궁금하였다.  기부자께서는 다행히 성금 기탁사연부터 살아왔던 삶과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일에 대한 자긍심 등을 포장되지 않은 상자에서 꺼내듯 이야기로 풀어 내 주셨다. 기부자는 지난해 대한민국 신지식인상 근로자 부문의 영광을 안으신 분이셨다.신지식인상은 명예로운 상이었지만 이에 따른 시상금이 있는 것은 아니란다.  도리어 신지식인협회에 협회비를 50만원 내고 왔다고 한다.  그러니 시상금으로 성금을 기탁한 것은 아니었다.

 기부자는 평소 가지고 있던 꿈이 퇴직하기 전에 꼭 성금을 기탁해 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혹시 이것도 안되면 자식대에서라도 실천해 주길 원하셨다고 한다. 그것도 우리 모금회에 5,000만원과 적십자사에도 5,000만원, 합이 1억원을 기탁하셨다. 궁금하였다. 작은액수도 아니고 1억원이란 큰 돈을 기탁하실때는 가족과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하였는지 여쭈어 보았다.기부자께서는 다시 그의 가족사를 천천히 풀어 놓아 주셨다.사모님과 미혼의 아들이 두명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하셨다.사모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건설현장에서 여자의 몸으로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울산 동구지역의 왠만한 건물에는 사모님의 손이 닿지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단다.결혼후 울산으로 이사 왔을때는 400만원의 전세방에서 시작하셨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부업으로 이쑤시게 끝에 테이핑하는 일부터 나중에는 새벽일찍 시장에서 마늘, 밤을 까는 일 등등 정말 듣고만 있어도 어렵게 생활하였던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억척스럽게 일하시면서도 꿈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꿈은 다름아닌 시골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을 여행시켜 드리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하셨다.

 소인배로서 나는 또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아직 미혼의 자녀들이 둘이나 있다고 하셨는데 자녀들이 결혼하게 되면 많은 돈이 들것이고 이것이 걱정되지는 않았을까 여쭈어 보았다. 기부자는 빙그레 웃으시며 "조금 모아둔 돈이 있어 도울 수 있지만 그들도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해야지요?"
그러면서 걱정하는 내게 오히려 가족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결정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위로해 준다.

 사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꼭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기부자께 제안하기를 이미 성금은 입금하여 주셨지만 성금전달식을 갖자고 말씀 드렸다. 저희 모금회 전달식장에서 세상이 알 수 있도록 전달식을 하자고 하였더니 한사코 거절 하신다. 남이 알아주길 바래 한 일도 아니고 본인의 꿈을 이룬것 뿐이란다. 그리고 다음 한마디, 미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전달식을 하기 위해 나가면 그만큼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에 손해를 입히게 된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아차!  이정도 밖에 생각하지 못한 소인배인 내가 다시 부끄러웠다.  그래서일까 이 분의 사연이 각박한 세상에 더 알려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오는 2월 4일 월요일 오후 3시.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 제가 소개해 드린 천사를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박하다고 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천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행복하다.이 행복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기부자님께 그분이 직접 들을 수 없을지라도 여러분의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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