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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형 총리감으로 낙점을 받은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총리직 지명 5일 만에 낙마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식적인 첫 인사가 오점을 찍은 셈이다. 낙마한 김용준 위원장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은 참담하다. '보청기 총리'라는 우려를 낳은 그였지만 박근혜식 신뢰를 바탕으로 한 그의 중용은 사회적 약자의 대통합 인사라는 명분으로 강행됐다. 문제는 그가 사회적 약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낙마를 결심한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준 것은 스스로에 자성이 아닌 언론에 대한 원망이었다.

 압권은 무차별적인 의혹보도를 두고 '가족들이 충격에 졸도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났고 내 가정은 물론 자녀의 가정까지 파탄되기 일보 직전으로 몰렸다'는 발언이다. 두 아들의 병역면제나 부동산 관련 해명을 하기보다는 감정적 호소를 통해 국민정서에 기대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그의 도덕성이 아니다. 청렴을 온몸에 휘감고 원칙과 법치를 속옷으로 무장한 그를 기대한 것도 아니다.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말이나 그의 행적이 드러난 의혹과 너무나 괴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괴리의 공간을 채우는 것은 국민들의 실망감이 아니라 허탈감이다.

 그는 뭐라고 했나. 과거 법관시절, 최선의 법률가는 바르게 살고 부지런히 일하다가 가난하게 죽는다는 말이 있다고 강조하며 후배 법조인들에게 근검절약을 이야기했던 그였다. 물론  투기 바람이 불던 1970∼80년대 여유자금이 있었던 사람 중 부동산 투기를 안 한 사람이 있겠냐는 이야기로 위안을 삼는 인사들도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겪은 우리의 현대사를 미루어 볼 때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할 공직 후보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자조 섞인 발언도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개발독재시대로 불리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살았다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보편적인 일로 덮는 것은 곤란하다. 돈이 없어 이렇게 살지 못한 사람도 있고, 돈이 있어도 이렇게 살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래놓고 '가정파탄' 이야기를 하면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김용준 위원장은 가정파탄을 이야기 하지만 국민들은 공직에 대한 혐오감, 나아가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모든 인사가 신중해야 할 일이지만 새 정부의 첫인사는 더욱 그렇다. 그런 까닭에 첫인사가 발표된 직후 우려를 안주머니에 넣어둔 국민들도 가능한 조심스럽게 사태의 추이를 살폈다. 그런 기류의 저변에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새 정부에 가혹한 질책은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박근혜 스타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어쩌면 더 나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긍정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도 상당부분 있었다. 하지만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처리에서 어긋나기 시작한 기대는 김용준 낙마에서 터닝 포인트로 돌변했다. 스스로 부덕을 이야기 하고 과오에 대한 솔직한 참회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아뿔싸, 이건 도리어 가정파탄이 날 지경이라며 원망을 한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때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는데, 왜 남의 집 안방 서랍까지 뒤지느냐며 불쾌해 한다. 우라질, 내가 뭐 큰 잘못을 했다고 이 야단들이냐는 눈빛이 차라리 섬뜩할 지경이다.

 이쯤 되면 인사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있을 법하지만 '박근혜 스타일'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사적 영역의 검증은 비공개로하고 업무관련 검증은 공개로 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과연 그런 시스템이 옳은가. 4년의 장수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행정부의 실세로 낙점됐을 때 언론은 가혹했다. 일부는 '오바마의 최대 실수'라고 이야기 했고 청문에 앞서 언론은 남편 클린턴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발생한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의 몸통이 힐러리였다는 폭로를 연일 보도했다. 화이트워터 부동산 투자 관련 의혹, 자신이 소유한 로펌의 회계장부 소실, 백악관 여행 담당 직원 해고 연루설, 영부인 시절 고가의 사적인 선물을 받았던 일 등이 들춰졌다. 심지어 힐러리는 백악관 새 안주인이 되면서 인테리어 비용에만 40만 달러를 썼는데 예산보다 25만 달러나 초과했다는 의혹까지 터졌다. 물론 미 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모든 의혹을 까발렸다. 결과는 15대1의 인준 통과였다. 의혹을 정면으로 파헤쳐 실체 없는 추문은 추문으로 남기고 사실관계가 드러난 부분은 사과했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도 청문회 내내 당당하게 자신의 문제를 국민 앞에 밝힌 그녀에게 더 이상 추문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뒤 누구보다 성공한 국무장관으로 힐러리는 공직을 떠났다. 가정파탄을 이야기 하는 공직 후보와 자신의 공과를 이야기 하는 후보의 차이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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