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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숲이 잔기침을 하며 겨울의 옷을 한 꺼풀씩 벗고 봄 준비에 들었다. 뒤이어 나무들은 가지마다 꽃눈 잎눈을 달고 찬란한 계절을 열어 보일 것이다. 태화강 변 산책로에는 성질 급한 매화가 수줍은 볼을 내밀어 봄 마중에 나섰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다. 가지마다 푸른 수액이 돌고 새순이 나오듯이 너희는 결혼이라는 출발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간 사랑의 결실은 인륜지 대사라는 커다란 출발선상에 섰다.

 아, 신은 그간 그리도 꼭꼭 감추고 숨겨왔던 인연의 배필을 오늘에서야 펼쳐 보이려했나 보다. 만물이 움을 틔우는 봄의 초입에 귀한 인연의 잔치를 세상 앞에 진중하게 알렸다. 어떤 세상의 꽃이 이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하늘이 내린 인연이고, 신이 점지해준 축복이다. 이렇게 가슴 벅차고 의미 깊은 날은 다시없으리.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용범아, 효진아.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영화의 주인공보다도 찬란하고 거룩한 장면들을 연출해야 한다. 나는 지금부터 펼쳐질 명화 한편을 설레는 가슴으로 지켜보는 관객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그런 명화였으면 좋겠다. 내 시력과 감성이 무디어지는 날까지 한 순간도 놓치기 아까운 그런 명화 말이다.

 지내고 보면 젊음은 잠시란다. 시간은 귀한 것이다. 하찮은 허상을 잡으려고 시간을 허비하지는 마라. 아무리 적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 하루 해 앞에서 희망을 나누고, 햇빛 좋은 낮에는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 구슬땀도 흘려라. 저무는 저녁이면 하루라는 선물에 감사하여 기도로 몸을 누이거라. 기쁨과 슬픔은 이웃과 나누고 서로의 부족함까지 보듬어 사랑할 것을 명심해라. 그런 삶이라야 스스로 여유롭고 성숙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이 생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한다. 부부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물어올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두 개체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겠는가.

 부부라 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둘이면서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는 관계일 뿐이다. 거문고의 현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연주자에 의해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이 탄생하듯, 부부는 서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하나 된 화음을 낼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결혼이란 남녀가 만나 인생이라는 집 한 칸을 짓는 일이다. 사랑과 믿음으로 다져진 바탕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두 기둥을 세울 일이다. 위로는 보기 좋게 지붕을 덮어 눈비를 가리고, 사방으로는 벽을 쌓아 바람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다 가족이라는 너희만의 고유한 공간을 가꾸어가는 일이다. 부부라는 두 기둥은 집이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제자리에 충실할 때 가장 집다운 집이 되는 것이다. 두 기둥이 하나 되어 '일심동체'가 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이다.

 둘만의 아름다운 집을 지어라. 집안에는 삶의 향기가 피어나고 사랑의 물이 흘러야 할 것이다. 봄이면 우물가로 벌 나비가 찾아들어 꿀을 물어 나르고, 여름이면 창을 열어 가는 바람을 청해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더위를 식힐 수 있어야겠다. 가을이면 날 다람쥐와 청솔모가 통통한 도토리를 물고 와 주인의 일 년 치 농사를 위로하고, 겨울날은 지붕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을 바라보며 한 편의 시를 소리 내어 읊는 부부시인이 되어갔으면 참 좋겠다.

 그때마다 마당을 휘돌아나가던 남풍이 인생은 둘이라서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거문고 가락으로 예찬을 거든다면 더 살맛나는 집이겠다.
 새봄, 새날을 여는 너희들에게 연분홍빛 진달래 한 다발을 함박웃음으로 건넨다.
 용범이 기둥, 효진이 기둥에게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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