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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미제 현안으로 기록됐다. 보존문제가 답보상태에 있는 현실은 가슴 답답한 일이지만 이 정부의 마지막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화두가 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문제의 심각성이 국가적 과제로 부각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일이다.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것은 40년 전의 일이지만 암각화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문화적 DNA를 보여주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이 문제를 정부의 미제 현안으로 부각시키고 반성을 촉구한 것은 김황식 국무총리다. 김 총리는 지난 15일 현 정부 마지막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과제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지연돼 냉철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총리가 반구대암각화와 만난 것은 지난 2011년이다. 그는 국회에서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제기되자 현장을 찾았다. 앞서 김 총리는 총리실 안에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열어 울산시와 문화재청, 수자원공사 등이 참여하는 범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그가 반구대암각화에 대해 이 같은 애정을 가진 것은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남다른 식견 때문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 역사서다. 상고사에 대한 흔적이 사라지고 고대사의 비밀이 짝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모호한 우리에게 반구대암각화는 숨은 그림처럼 한민족의 이동경로와 문화의 뿌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그 증좌를 김 총리는 발견한 셈이다. 역사와 문화의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의장의 증언처럼 반구대암각화 앞에 선 순간 전율을 느낀다. 그 전율이 김 총리를 마지막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반구대암각화를 거론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반구대암각화와 관련한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울산시가 주관한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수리모형 중간보고회였고 다른 하나는 반구대포럼의 출범이었다. 수위를 낮추는 문제와 물길을 돌리는 문제로 집약된 반구대암각화 보존 방법은 일단 물길 돌리기가 현실적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그러자 다음날 출범한 반구대포럼에서는 물길돌리기는 원형훼손이라며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가장 목소리를 높인 이는 다름 아닌 40년 전 반구대를 처음 목격한 문명대 교수였다. 물길을 돌리면 원형의 반구대암각화가 변형되고 결국 훼손을 가속화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말이다. 그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40년 전 반구대암각화를 발견했을 때 암각화는 이미 원형을 훼손한 채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반구대에 고래를 새긴 이들이 제를 올리고 춤과 노래로 풍요를 기원하던 땅은 이미 거대한 인공호수로 바뀌었고 영겁의 세월을 층층이 쌓아 돌덩이가 된 퇴적암은 물속에서 지난한 세월을 반추하며 견고함을 잃어가기 시작한 때였다.

 결과 보고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과 고단한 협의를 진행해야겠지만 여전히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난제로 남아 있다. 물에서 건져내야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방법론이 다른 것은 원칙과 현실의 충돌이다. 학계와 문화재청은 원칙을 중시한다. 지금 있는 상태를 원형으로 보고 그 원형에 충실한 보존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원형이 훼손된 상황에서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근거를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는 쪽이 울산시의 입장이다. 충돌 지점의 괴리가 이처럼 현저한 간극이 있기에 보존 해법은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어떤 방안이 옳은가에 집중하지 말고 우선 물부터 빼놓고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고려해야할 문제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를 못 꺼내는 현실이 딱하기만 하다.

 문제는 보존 방법이 아니라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인식의 부재다. 중요하다고 이야기만 하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당장 물을 빼지 않는다. 반구대 암각화는 단순한 바위그림이 아니라 세계 포경사의 핵심적인 기록물이자 인류의 이동경로와 각 대륙에 흩어진 문화적 유사성을 알려주는 보물지도다. 노르웨이 사미 문명을 만든 콤사족과 서유럽의 바스크족부터 우랄 알타이 지방을 근거로 한 중앙아시아권의 수메르 문명과 동북아시에서 꽃을 피운 홍산 문명까지 거대한 문화적 유전인자들이 바위그림 속에 숨어 있다. 대륙의 문화루트 만이 아니다. 폴로네시안들의 고래잡이와 뉴질랜드의 오랜 조상,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해양문화루트의 흔적이 수천 년의 세월을 두고 접점을 찾은 지점이 반구대암각화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절묘하게 만난 지점에 반구대인이 새로운 문화를 열었고 그 흔적을 암각화로 남겼다. 그 위대한 증표가 물속에 자맥질 하는데 언제까지 탁상공론으로 밤을 새울 것인지 가슴 한켠이 꽉 막혀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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