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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최근 폐지를 모은 돈 10만원을 장학기금으로 쾌척한 포항의 채옥순(82)할머니가 얼마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기초수급자로 정부가 지급하는 30만원으로 한 달 생계를 근근히 꾸려나가고 있는 채 할머니에게 1년 동안 꼬박 추위와 더위를 이겨가며 폐지를 수거해 한푼 두푼 모은 10만원은 어느 누구의 기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천금 같은 돈이다.
 채 할머니는 돈이 너무 적어서 미안하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많은 관심과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 오히려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 할머니는 힘이 닿는 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은혜를 되갚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 주위에는 채 할머니와 같이 도리어 도움을 받아도 부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와 선행을 베풀고 있으며, 뭇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오히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채 할머니가 아니라 넉넉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온갖 탐욕을 부리며 기부와 선행에는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다.

 우리 울산에도 최근 현대중공업 박우현(57)기원이 매월 급여의 일부를 모은 적금 1억원을 대한적십자사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쾌척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퇴직을 목전에 둔 박씨가 지난 25년간 틈틈이 모은 돈을 사회를 위해 내놓은 배경은 남을 돕고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이 행복할 수 없었다며, 수혜자들이 성금을 받고 잠시라도 기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박씨가 남은 노후를 풍족하게 살 만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비우고 베품으로써 채울 수 있고,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자신이 느끼고 누리는 보람과 기쁨이 더 커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살아오면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서예령(7)어린이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삶의 일부로 여기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태어날때부터 기부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사랑의 열매에는 벌써 5년째 단골손님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채 할머니와 박 기원처럼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선진국처럼 기부와 선행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필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최근 운영위원회를 열어 2012년도 결산보고회를 가졌었다.
 수년째 목표를 초과달성해온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더불어 더욱 기쁜 소식은 거액을 쾌척하는 기업과 자산가 못지않게 소액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부와 관련된 훈훈한 미담도 적지 않았다. 대회 상금을 전액 기부한 사람도 있었고, 동창회나 각종 모임의 회비 일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결혼이나 돌잔치 등 경사스런 날을 기념하고 더욱 뜻깊게 새기기 위해 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모의 뜻과 의지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어린이는 이제 스스로 한해 동안 돼지저금통에 모았던 돈을 내놓는 기부천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더 많이 가지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베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가 진정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울산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 기부와 선행의 바이러스가 넓고 깊게 퍼지는 것은 모두의 밝고 따뜻한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나와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 작은 관심과 배려, 나눔과 베품이 강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기부와 선행에 동참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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