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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뚜렷하거나 명확하지 않고 어정쩡한 것을 '애매하다'라고 한다. 한자로 애(曖)란 '가리워지다, 흐리다'란 뜻이고, 매(昧)는 '컴컴하다, 어둡다'는 의미라 하니, 애매하다는 것은 어슴푸레한 새벽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애매하다란 말에 걸맞은 달이 바로 이월(二月)이라 하겠다. 이월은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을 지나 바람 끝이 누그러지지만 봄이라 하기엔 아직 이른,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달이다.

 이월과 음이 같은 낱말로 이월(移越)이 있다. 일이나 안건을 다음으로 넘기는 것을 말한다. 새해의 굳은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월(二月)로 이월(移越)된다. 올해는 술과 담배를 끊자, 운동을 하자,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자하며 수첩에 적고 벽에 붙여보지만, 매서운 결심은 일월이 채 가기도 전에 흐트러져,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몸이 안 좋아서, 너무 추워서 하며 변명거리를 찾다가, '다음 달부터' 하고 넘겨버린다. 그리고 막상 이월이 되면, '새봄이 되면 새롭게 시작해야지'하며 삼월로 이월되는 것이다.

 아, 하지만 이월은 너무 짧아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월되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이월은 30일이 안 되는 유일한 달이다. 원래는 30일이었지만 율리우스 시저(July·7월)와 아우구스투스 황제(August·8월)에게 각각 하루씩을 빼앗겨 짧아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자신을 뚜렷이 내세우지 못하는 애매한 달인 이월. 무언가 명확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은근슬쩍 다음 달로 넘겨버리게 되는 이월. 이월을 발음해보라. '이'는 양성 모음도 음성 모음도 아닌 중성 모음이다. 오월의 부드러움과 유월의 매끄러움, 팔월의 생동감도 없이 이월은 눅눅한 낙엽 위에 스며드는 가랑비처럼 입술 끝에서 소리 없이 문득 사라지는 것이다.

 칸트는 이월을 '아름다운 달'이라고 하였다. 날짜가 짧으므로 고통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데리고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 교복 가게 안을 가득 메운 학생과 학부모들을 보았다. 그들은 치수를 재고, 옷을 고르고, 탈의실을 들락거리며 깔깔깔 웃어댔다. 그 활기찬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월은 어슴푸레하고 모호하지만 그것은 황혼이 아닌 새벽의 것이다. 새벽이 지나면 거침없이 밝은 아침이 온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이월을 '삼나무에 꽃바람이 부는 달'이라고 하였다. 꽃샘추위가 있는 달이지만 그 추위가 가면 꽃이 활짝 피리라는 희망의 전언이 들어있는 이름이다. 이월은 입춘과 우수의 달이다. 얼음이 풀리는 달이며 버들가지가 눈 뜨는 달이다. 겨우내 전봇대 위에 무겁게 앉아있던 까마귀들이 줄지어 돌아가는 달이다. 매화의 봉우리가 부풀고 눈 속에서 복수초가 피는 달이다. 교복을 맞추고 새 가방을 장만하는 달인 것이다.

 이월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February'는 '정화'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선 이월에 가축의 번식을 담당하는 전원의 신인 루페르쿠스를 기리는 루페르칼리아란 제전이 있었다. 이때 부정을 막기 위해 산양의 피를 묻힌 가죽 끈을 사용하였는데, 이 가죽 끈을 febura 라고 불렀다. 그 제전이 있는 이월을 '부정을 방지하고 정화하는 달'이란 의미로 Februarius라 했고, 여기에서 영어 February가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February'에는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월은 준비하는 달이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부지런히 수액을 모으는 달. 그 이월이 가고 있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봄맞이 준비만큼은 이월시키지 말고 마무리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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