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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월산에 자리한 중구 성안동 성동마을 전경. 산으로 둘러싸인 성동마을은 도심을 벗어나 고즈넉한 시골을 따라 고씨정각의 삼야정, 홍살문 등 선조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유은경기자 usyek@


#성동마을 회관길 안쪽에 위치
울산 도심의 진산(鎭山) 격인 함월산에 자리 잡은 성안동은, 그 자체로 산 머리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성안동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성동마을과 풍암마을이 나타나는데, 위에서 보면 그 모습이 오목한 분지 같아서 속세와 격리된 하나의 별천지처럼 보인다.


 매섭지만 청명한 겨울바람을 느끼며 2월 하순 찾게 된 성동마을. 성안동 구민운동장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니 덕원사 입구 표지석 옆에 중구의 둘레길 중 하나인 '성안옛길' 안내판이 보인다. 1, 2, 3코스가 정겹게 그려져 있다.


 성동마을이 있는 곳은 그 중에서도 3코스. 구민운동장을 왼쪽에 두고 잔잔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성안마을로 향한다. 10여분 걸으니 고즈넉한 시골풍경의 옛 마을이 제 살을 내보인다. 개짓는 소리와 간혹 만나게 되는 아낙들의 모습이 시골정취를 더한다. 한 점 거스를 것 없는 겨울하늘과 마주하니 두 눈은 절로 시원해지고 폐부 깊숙이 마신 상쾌한 공기가 온 몸으로 퍼져가는 느낌이다.
 

조선 영조 때 선비 고극명이 손수 만든 정각
연못파고 나무심어 자연·인공 조화 돋보여
돌·표지석에 삼강오륜 새겨 신조로 삼기도


 

   
 
성동마을 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작은 소로가 있어 걸음을 멈춘다. 폭이 좁은 터라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 길을 따라 곧장 걸으니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객을 반긴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인공연못과 팔작지붕의 한 정각. 그제서야 목적지에 당도했음을 느낀다. 바로 조선 영조 때 선비 고극명(高克明·1769 ~ 1855)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삼야정'(三野亭·중구 성안동 성동1길 121번지)이다. 성안옛길에는 고씨 재실이라 표기돼 있지만, 사실 재실(齋室)이 아니라 정각(亭閣)이다.

#사계절 인공정원 특유의 멋
삼야정은 자연석으로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세운 정자다. 정자 앞에 대문과 연못을 조성했고, 주위에는 벚나무·소나무·대나무·배롱나무 등 유학자의 심성을 수양하는 식물군을 심어 주변 숲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도 돋보인다.


 직사각형 연못과 둥근 섬이 조화를 이룬 방지원도(方池圓島)의 전형이다. 이는 둥근 하늘과 모난 땅을 뜻하는 선인들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다. 여기에 누마루에 오른 사람까지 포함하면 결국 '천지인'(天地人)이 되는 셈이다.


 2월 하순 찾은 삼야정은, 자못 황량하다. 웅장한 볼거리를 기대했으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타 계절과 다른 호젓한 운치가 있다. 한파가 있을 땐 수풀에 내린 눈꽃이, 날이 풀려 봄이 되면 흩날리는 벚꽃 잎이 절경이란다. 특히 여름이면 울거진 수풀림과 갖가지 꽃이 만개해 자연 속 인공정원 특유의 멋을 전한다.


 현재는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고극명의 손녀인 35대손 고순동씨가 정각 옆에 집을 지어 살고 있어, 주인 허락없이는 가까이에서 많은 것을 감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정자와 연못이 외부로 드러나 있는 탓에 실제 바깥에서도 충분히 중요한 것은 다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극명 효성 기려 왕이 내린 '홍살문'

   
 
조선말기 효자로 손꼽혔던 고극명의 자(字)는 명언(明彦), 호(號)는 삼야(三野)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터라 정자 입구에는 그의 효성을 칭송해 왕이 내린 홍살문(紅─門)도 세워져 있다. 그는 풍수에도 조예가 깊어 성인산(聖人山) 밑에 좋은 땅을 얻어 성인동(聖人洞)(현 성안동)이라 이름하고 농경(農耕)과 종수(種樹)에 힘썼으며 삼야정과 같은 원림도 조성했다.


 삼야정은 그의 모든 관심사와 연구의 결과물이다. 한국의 여러 정자들이 산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담고자 했다면, 고극명의 삼야정은 그 나름대로의 인공을 가미해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삼야정을 묘사한 시가 한 수 있다.
 
늙어 새로운 터를 잡아 경영하니
백가지의 이름난 꽃이요, 조그마한 연못이구나
정자 처마아래에 달린 삼야라는 세글자를 두고 보라
이 노인의 심사를 하늘에 계신 노인은 알 것이다.
 
 고극명 그 자신이 지은 시에는 정자 일곽의 모습이 보다 상세하다.
 
성인동 산아래 늙은이의 터에
늙은이가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네
늙은이는 성인동의 들에서 태어나고 늙어서
황제가 힘이 있고 없음을 늙은이는 알지 못하네
 
 이렇게 고극명은 스스로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고, 과수와 꽃을 가꾸는 것은 물론, 돌에 삼강오륜까지 새겨 신조로 삼았다. 심지어 그 앞을 흐르는 실개울에도 성계(聖溪)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연못의 남쪽 산기슭에 이를 알 수 있는 표지석들이 남아있다. 홍살문을 지나 대문으로 가는 왼편에 보면 삼강(三綱), 오륜(五綸), 성계(聖溪)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돌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삼야정은 정자를 볼 게 아니라 정자 주변을 열심히 둘러봐야 한다. 협소한 계곡에 방지원도를 조성해 음양사상과 천지사상을 풀어놓았다. 작은 규모의 원림이지만 그 속엔 삼라만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원림을 조성한 것은 사실 이곳 경치가 그리 빼어나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방지원도를 통해 좋은 경치를 직접 만든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는 그의 호가 삼야라서가 아니라, 경치 탓에 '첫째도 들(野), 둘째도 들(野), 셋째도 들(野)'인 삼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극명은 경치가 뛰어나 성인동에 머문 게 아니었다. 태어나 자란 곳이고 봉양할 부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장은 별장인지라, 볼만한 경치가 필요했다. 그런데 성인동에는 물이 풍부치 않았고 수려한 계곡도 없었다. 때문에 당시 가장 일반적인 조경수법이었던 방지원도를 택했던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돌을 잘 다룬 듯 하다. 그가 삼야정 앞에 만든 방지원도는 돌로 쌓은 축대가 높고 연못 주변의 산기슭이나 개울가에도 별도로 돌을 세우거나 쌓았다. 또 원림과 접한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그의 묘소 앞에도 그가 만지고 다뤘던 돌이 한 줄로 세워져 있다. 그는 살아서도 삼야정, 죽어서도 삼야정이던 것이다.
 
#삼야정 건너편 대숲길
삼야정 바로 건너편에는 그리 길지 않은 대숲 길도 있다. 그리로 난 산책로를 찬찬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노라면, 간간히 스쳐가는 대숲바람과 그 바람결에 서걱거리는 댓잎 소리가 오롯하게 느껴진다.


 그곳에서 삼야정 연못을 바라다보면 사각형의 연못 안에 우거진 풀과 물고기들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둥근 연못과 그 안의 둥근 섬은 신선들이 사는 하늘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그 자체로 하나의 천지였던 이곳에선 매 계절마다 가지각색 꽃나무들이 춤을 추고, 소나무 등 고목 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며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갔을 것이다.


 삼야정은 과거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며 느리게 천천히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문득 수백 년 전 자연 속 풍류의 멋과 유학자로서의 본분을 알았던 고극명이 정각 마루에 그대로 앉아있을 것만 같았다.
※참고 (울산의 산수를 품에 안은 누정-이창업·울산발전연구원 부설 울산학연구센터)


◆주변에 가 볼만 한 곳
성안동 구민운동장에서 성동마을 거쳐 조롱박터널을 지나는 길이다.


 성안동은 울산의 주산인 함월산 위에 마을이 형성된 만큼 둘레길들도 많다. 그 중 성안옛길 1, 2, 3코스는 가벼운 산책코스 중 하나. 성안동 구민운동장 입구에 서면 덕원사입구표지석 옆에 성안옛길 안내판이 서있다. 구민운동장을 왼쪽에 두고 잔잔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성안마을로 향한다. 성동마을 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작은 소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가 객을 반긴다. 작은 연못을 발견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선조들의 정취를 느껴보자. 고극명이 지은 '삼야정(三野亭)' 앞이다.


 간간히 두루미 날갯짓을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걷노라면 어느새 황토방가든 앞을 지나 삼거리와 만난다. 왼쪽으로 나있는 금호어울림아파트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구민회관으로 바로 향한다.


 다시 길을 잡고 걸으면 풍암마을과 교육청 방향으로 갈리는 세 갈래길을 만난다. 교육청 방향으로 길을 잡고, 길촌마을 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어느새 점주농원앞.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성안동 입구를 향한다. 성안동에 들어서서 성안외곽길을 따라 걸으면 출발지였던 구민운동장으로 향하게 된다. 마을길이라 시멘트 포장이 돼있다는 게 약간의 흠이지만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마음의 묵은 때를 씻을 수 있어 좋다.

■ 원점회귀 걷기 코스
성안동 구민운동장-성안동 마을회관-삼야정-황토방가든-조롱박 터널-길촌마을 입구-점주농원-성안동입구-구민회관(전체 소요시간 2시간) 
 ※자료제공 울산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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