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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는 고래다. 동해안의 다른 도시인 포항이나 속초 등이 배 아파할 일이지만 한반도의 고래는 이제 울산이 '원조'가 됐다. 고래축제나 특구지정이 그 증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사냥의 증좌는 울산을 고래 원조로 부르는데 어떤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다. 원조 인증을 바위에 새겼으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올해부터 울산 남구가 550톤급 크루즈선을 새로 도입했다. 남구는 이 배를 기존의 고래바다여행선을 대신하는 새로운 여행선으로 운항하기로 하고 최근 크루즈선의 채색 디자인 시안 제작도 마무리한 상태다. 문제는 배가 있고 6,000년 전 고래사냥의 증좌가 있는 울산이지만 고래를 꿈과 희망으로 연결할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다.

 10년 전의 일이다. 일상과 잠시 결별하고 미국을 돌아다닐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양의 서커스와 만났다.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에서 공연한 서커스단의 '미스테르(Mystere)'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 공연을 본 이후 태양의 서커스라는 곳에 호기심이 생겼다. 태양의 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의 낙후된 탄광촌 퀘벡에서 시작됐다. 불과 두해전인 1982년 '베생폴 거리축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길거리극단 단원 10여명이 사라져 가는 서커스의 부활을 모의했다. 가진 것이라곤 열정 하나였던 그들은 몬트리올 북부의 한 쓰레기 매립장 부지에 서커스 공연장을 차렸다. 옛 것을 그대로 복원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본 그들은 서커스에 컴퓨터그래픽(CG)과 특수효과를 입혔다. 그리고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공연의 전체 맥락을 이야기로 덧씌웠다. 바로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반전이 일어났다. 한 물 갔다고 평가 받던 서커스가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됐다. 이들은 지난 해 전세계를 돌며 공연하면서 매출액만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각국 상설공연장과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관람한 누적관람객만 1억명이 넘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축구로 유명한 영국의 리버풀은 도시의 문화브랜드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지난 1990년대 후반 비틀스와 축구의 도시였던 리버풀은 제조업 중심 성장이 한계에 달하며 저성장과 실업으로 골머리를 앓던 항구도시였다. 그 당시 리버풀을 변화시킨 동력은 바로 리버풀 만이 가진 역사성의 회복이었다. 리버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성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속에 수많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여기에 문화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설탕과 담배 등 무역품들을 보관했던 앨버트 독의 거대한 창고건물에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테이트 리버풀을 비롯해 비틀스 스토리, 해양박물관과 국제노예박물관 등으로 탈바꿈했다. 그후 유네스코는 2004년 항구 주변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2008년에는 '유럽의 문화수도'라는 명예로 보답했다. 쇠락한 공업도시, 죽어가던 항구도시가 한 해 4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역사 문화도시로 거듭난 사례다.

 문화를 접목해 도시를 재생한 사례는 아시아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혼슈 중앙부에 위치한 인구 46만명의 도시 가나자와다. 이곳은 관광객만 한 해에 700만명에 달한다. 1996년 문을 연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창조도시 가나자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80년 역사의 방적공장이 1993년 문을 닫자 시 당국은 이곳을 인수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고 공장과 창고는 음악·미술 등 다양한 창작활동 공간으로 바뀌었다. 메이지시대 지어진 민가들을 보존해놓은 사립박물관이었던 '창작의 숲'은 2005년부터 시민들이 판화·염색·직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상당수 주민들이 공예를 생계로 삼고 있고 지역의 기업 대부분이 공예·방직업체라는 점을 활용해 전통을 창조경제에 접목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창조경제다.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공계 마인드의 중무장을 우려했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3.1절 기념사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통해 창조경제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바탕이 문화 콘텐츠의 개발이라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있던 암울한 시대에 이 땅이 문화로 꽃피는 나라가 되어 세계의 주역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백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대목이다. 백범 선생의 목소리가 웅변적이고 선언적이었다면 박근혜식 문화에는 창조경제가 견고한 다리로 놓여 있다. 고래문화를 창조경제와 접목시켜 울산의 도시 브랜드를 한단계 끌어 올리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해 보인다. 고래는 꿈이다. 동해바다에 솟구치는 고래등이 육중한 물기둥으로 펼쳐지는 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내일의 주인공인 다음 세대의 창이다. 반구대암각화의 고래를 태화강에 띄워 동해로 끌어내는 일은 바로 울산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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