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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 작가.
#작가소개
1936년 4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 상인의 4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8·15광복 후 아버지가 부르주아지로 분류되면서 가족과 함께 원산으로 이주해 중학교를 마쳤다. 이어 원산고에 다니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월남, 한달 간 부산 피난민수용소 생활을 거쳐 목포에 정착해 목포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중퇴했다.


 대학 재학 중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 《두만강》이후, 1959년 <자유문학>에 단편《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투고, 안수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이듬해《우상의 집》,《가면고》등을 거쳐 <새벽>에 중편《광장》을 발표했다.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광장》은 작가가 25세에 발표한 소설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연 첫번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밖에 5·16군사정변 이후의 절망을 그린《회색인》, 한국 사회가 새로운 식민지에 불과하다고 비판한《총독의 소리》, 박태원의 소설 제목을 차용, 60년대 양심적 예술가상을 제시한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실향민의 아픔을 노래한《하늘의 다리》, 냉전 이데올로기의 근원지를 찾아다니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탐구한 자전적 소설《화두》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받았고, 1979년《최인훈 전집》이 출간됐다. 이후 평론집《문학을 찾아서》와 산문집《길에 관한 명상》을 출간, 2001년 5월 서울예술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에피소드
최인훈 작가는 판을 바꿀 때마다 끊임 없이 작품을 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광장의 경우 10번이나 고쳐썼고 화두 역시 수차례 고쳐썼다.


 그는 작품을 개작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신력이 살아있는 동안에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후대의 독자들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광장'은 4·19 직후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무언가를 증언한다는 생각으로 숨가쁘게 썼는데 이번에는 좀더 문학성을 보강한다는 취지로 새로 썼습니다"


 <광장>은 발표 이듬해, 최씨가 당초 원고지 600매 정도였던 작품 분량을 800여 매로 늘려 정향사에서 첫 개작 단행본을 냈다. 이어 1967년 신구문화사, 1973년 민음사에서 각각 재출간될 때 단어와 문맥에 수정을 가했다. 대폭 바뀐 것은 1976년 출간된 '최인훈 전집' 초판에서다. 네 번째 개작인 이 판본에서 최씨는 기존 한자어 어휘 대부분을 우리말로 풀어쓰고, 당초 은혜, 윤애를 상징하던 갈매기 두 마리를 은혜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명준의 딸로 고쳐 표현하는 등 많은 부분을 고쳤다. 갈매기의 의미 변화로 인해 명준의 죽음이 '이념적 절망'이 아닌 '완전한 사랑의 추구'로 해석되면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변모했다.


 최씨는 전집 발간 후에도 명준이 포로수용소에서 남측 대표를 만난 것을 상상으로 처리해 역사적 사실과 부합시키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광장>을 개작, 작품발표 이후 열 차례나 고쳐 쓰는 열의를 보였다.


 작가 김연수는 최인훈의 개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최인훈의 <광장>을 여러 번 읽었다. 작가가 개작을 왜 했는지 알 것 같다. 소설은 현실의 상황을 담아낸다. 동시에 좋은 소설은 어느 시대에 읽어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둘을 함께 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끊임없이 현실의 상황을 담아내려고 개작을 하지 않을까. 또 소설에서 미진했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보인다. 나도 장편소설을 출간한 후, 뒷부분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바다의 편지.
#최근 인기작
최인훈에겐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광장'의 유명세 때문이다. 하지만 '광장'이 뿜어낸 아우라는 역설적으로 최인훈의 문학적 성과 일부만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소설, 희곡, 비평에 걸쳐 거대한 사유의 산맥을 만들어 낸 독창적 사상가였다.


 선집 <바다의 편지>는 작가를 넘어 사상가로서 최인훈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작가가 최인훈이라는 점에서, 기획을 고려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오인영 교수라는 점이 의외다. '문명진화의 길', '근대세계의 길''한국사외의 길'과 '바다의 편지'등 4부로 나뉜 구성은 '작가' 최인훈을 넘어서 '사상가' 최인훈에 초점을 맞춘다. 오 교수는 최인훈에 대해 "'그는 유명하고 훌륭한 소설가다'라고 말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며 "사유의 힘으로 한국문화의 지평을 넓힌 지성"이라고 밝혔다. 또 "그의 사유는 한반도 안팎의 역사와 호모사피엔스인 인간의 문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면서 "그의 지성적 사유가 자아내는 공명을 굳이 문학이라는 울타리 안에다 가둬둘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극찬한다.


 선집의 제목이기도 한 '바다의 편지'는 작가의 문학적 생애, 사유의 궤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낙랑과 호동 불멸의 사랑 그후…. 바닷속 심해에 누워 있는 백골이 의식이 꺼져가는 순간 마지막으로 술회하는 형식의 이야기는 비유적이고 심오하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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