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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장이 바뀌자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변영섭 신임 문화재청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반구대암각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운동가로 세간에 알려진 그는 사실 한국 고미술학계에서 잘 알려진 전문가다. 특히 한국화를 연구한 연구 업적은 후학들의 텍스트로 알려질 정도의 권위를 가진 분이다. 그런 그가 반구대암각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운동을 벌여 오면서 국보 문화재의 관리와 보존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문화재 관련 기자들과 만나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마련이 문화재청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안다"면서 "이 문제는 울산시와 국토해양부 등의 관련 기관 간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사안이며, 문화재청으로서도 최선의 방안을 찾고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말로 고충을 토로했다.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반구대암각화의 국가관리나 이번에 밝힌 정치적 해결책은 모두가 그의 반구대암각화 보존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건무 청장부터 시작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재청의 보존의지가 변 청장에 와서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변 청장은 최근에도 반구대암각화를 찾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다시 돌아서 바라보면 울고 있는 반구대가 보였다는 말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그 애정을 행정가로서 육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감정적으로야 당장 사연댐 물을 빼고 반구대암각화를 온전히 햇살과 바람에 맡기고 싶겠지만 그런 마음이야 변청장 개인만의 절절함은 아니다. 지난 주말 반구대암각화를 찾은 수많은 울산시민이나 전국의 여러 문화재 애호가들은 물론, 처음 반구대와 마주한 사람조차 울컥하는 마음으로 반구대암각화와 이별했다. 그 절절함이 모여 하나가 된다면 보존운동 10년의 결실이 하나씩 현실화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변 청장은 기자회견 과정에서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문제를 '정치적 해법'이라는 용어로 이야기 했다. 운동가로서 변 청장이 아닌 행정가로서 변 청장이 반구대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반구대암각화 등 국가지정 문화재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발언도 그런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120만 울산시민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국가지정 문화재를 국가가 관리해 주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도 애초부터 국가가 총체적으로 관리 했다면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일 년 가운데 7~8개월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참담한 현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발견 40년이 지난 반구대암각화는 여전히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의 천대를 받고 있다. 40년의 세월 동안 방치돼 왔고 버려져 왔다. 발견 직후 관리권이 모호했던 시절, 이 땅의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는 물론 학부나 대학원의 전공자들까지 솜방망이를 들고 반구대를 찾았다. 그리고 무엇을 했나. 앞사람이 열심히 두들기고 간 자리에 먹물을 찍고 방망이를 두들겼다. 하얀 종이 위에 고래가 마술처럼 드러나면 탄성을 지르면서 우리가, 혹은 내가 반구대에서 직접 탁본을 떴노라고 자랑하며 다녔고 모 대학 연구팀은 연도측정과 암석 연구를 한다며 살벌한 기계를 동원해 수십 군데 타공을 가했고 심지어 어떤 학자라는 분은 직접 해머를 들고 바위 표면을 찍어 바르기도 했다.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그 때. 국가기관은 무얼 하고 있었나. 바위에 드러난 귀신고래 한 마리가 표면이 닳아 없어지는 신음을 토해내는 순간, 이 땅의 학자라는 분들과 전문가라는 분들은 정말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숭례문이 불탔다. 그 때 문화체육부 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지정 문화재는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 유흥준 당시 문화재 청장도 메아리처럼 떠들었다. "앞으로 국보와 보물은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책임토록 해야 한다" 주무 장관과 청장의 한목소리는 곧바로 문화재청의 지방청 설립 까지 검토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지만 숭례문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연기가 사라지고 재가 흩날리자 단호한 말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춰버렸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변 청장이 앞선 수장들의 전철을 밟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의지가 확고하고 애정이 남다른 청장이 반구대를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가 속한 반구대암각화 보존회에서 밝혔듯이 반구대는 우리 문화의 맏형이다.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생생한 증거가 기록된 곳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대한민국 문화정책의 실종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제 실천해야 한다. 다행히 청와대대변인도 반구대암각화 보존회의 주역이다. 이제 변 청장이 나서 반구대암각화의 관리권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 물문제와 세계유산을 동시에 해결하는 행정가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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