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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고향 울산서 사투리와 함께 살아온 것은 복된 삶"
울산사투리 모음집 펴낸 조용하 씨
2013년 03월 28일 (목) 19:32:32 김주영 uskjy@ulsanpress.net
   
▲ 조 대표는 "칠십 평생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고향의 정감어린 말들을 정리하게 됐다"며 "미숙하지만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니가 구쿠이까네 내가 그쿠지' 토박이말 수록
총 7,171개 사투리와 연관 파생어·뜻까지 정리
울산 사투리에 대한 애정 없인 절대 못해 낼 일
봉사로 행복해진 마음 삶까지 윤택하게 만들어

몇 일전 지역에서는 국어학자나 방언 전문가가 아닌 한 일반인이 울산 사투리 모음집을 내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최근 사투리 모음집 <니가 구쿠이까네 내가 그쿠지>(디자인위크)를 펴낸 울산 토박이 조용하(72)씨. 설비전문회사인 대일ENG의 대표로, 사업가의 길을 걸어온 그이지만 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번 책 발간은 지난 30년간 펼쳐온 봉사활동의 정점을 찍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27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조 대표의 모습은 나이와 언뜻 매치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희를 넘긴 인자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사투리 얘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젊은 인상인데다 활기찬 음성으로 이어가는 얘기 역시 막힘이 없었다.

#국어학자 아닌 일반인이 사투리 전문서적 발간
최근 책 출간 직후 전화통화를 할 때 "혹시 문자도 사용하시느냐"는 질문에 "문자만 하나, 카카오톡도 매일 하는데"라고 답했던 그가 생각나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사투리 책을 낸 과정이나 뒷 이야기가 좀 듣고 싶어 "책 내느라 고생 많으셨죠?"란 질문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외려 "책을 만드느라 2년간 고생하긴 했지만 오늘 몇몇 지역 언론에 나온것처럼 어디를 발로 뛰어다니고 뭐 그러면서 고생하지는 않았어요"라는 겸손한 대답.
 
그의 말처럼 비록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 완성한 책은 아니라 할지라도 일일이 7,171개의 사투리를 찾아 확인하고, 연관되는 파생어와 그 뜻까지 수록한 것은 절대 쉬운일은 아니었다. 특히 컴퓨터 작동이 용이한 나이도 아닌데 일일이 사투리를 인터넷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사전을 통해 행여 표준어는 아닌지, 그 용법이 정확한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은 울산 사투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일이었을 것이다.
   
▲ 조용하 대표의 삶이 소개한 동문집 및 고희 때 발간한 자서전과 최근 펴낸 울산 사투리 모음집.

 
책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냐는 얘기에는 "책 발간에 박종해 시인의 도움이 컸는데, 원고를 보다가 갑자기 '아 요거 재밌네. 제목으로 하소' 하는거예요. 그부분이 바로 '니가 구쿠이까네 내가 그쿠지, 니가 안구쿠먼 내가 그쿠나'였지요"라고 했다.
 
조 대표는 "사투리를 정리하다보니 울산의 방언은 파생어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 많았다"며 "예를 들어, 책 제목에도 들어가는 '그렇게 말하다'라는 뜻의 '구카다'는 파생어가 '구카이까네', '구쿠까봐', '구쿠제', '구쿠더나' 등 다양해서 모두 실었다"고 했다. 평소 '그카다'가 더 익숙했던지라 "'그카다'와 '구카다'의 차이는 뭔가요?"란 질문이 곧 나왔는데 그는 "경상북도에서는 그렇게 쓰지만 울산 사람들은 옛부터 구카다를 썼다"고 친절히 일러주었다.
 
또 조금 있으니 울산발전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봉숭'이란 단어가 울산 사투리가 맞는지를 묻는 전화가 오자 "내 책에 있는 단언데 잠깐 확인하고 일러주겠다"며 잠시 후 "봉숭이 울산 사투리가 맞다"고 답해주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에서 울산사투리에 관해서만큼은 준전문가가 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또 그동안 늘 써온 사투리지만 정리를 하다보니 사투리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또 엄연한 표준어인 단어들도 꽤 많았다고 했다. 특히 그가 유일하게 참고한 국어학자 조홍재씨의 <울산방언>에서 역시 실려있는 여러 단어들이 현재는 표준어임에도 사투리로 수록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지역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 그런 단어들 역시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 오른편에다 표준어라고 설명을 달았다. 또 울산사투리와 비슷한 영남지방 사투리, 외래어지만 지역에서 통용되거나 변형된 말 역시 함께 실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의 마음 책에 담아
쉽지 않은 일임에도 그가 사투리 책을 발간해 낸 덴 각지의 사람이 섞여 본래 '울산말'은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어있다.
 
"다른 지역 사투리도 그렇겠지만 울산의 옛말 역시 정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말들이예요. 내 고장 말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울산의 사투리는 부드럽고 정이 넘칩니다. 울산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거의 고향에서 살았는데 울산 사투리와 함께 살아온 것은 복 받은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울산의 말은 정감어리고 재미있습니다. 이번 책 발간은 지역사회에 대한 제 마지막 봉사의 마음이기도 하고요."
 
그의 이런 마음은 지난 30년간 '봉사의 달인'으로 살아온 지역사랑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처음 그를 찾을 땐 몰랐는데 그간 살아온 얘기를 듣다보니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봉사를 펼쳐왔던 것.
 
1982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갱생보호원에서 출소자 교화봉사부터 시작한 그의 봉사활동은 이후 법무부 범죄예방봉사위, 통일부 평화통일자문위, 울산구치소, 울산남부경찰서 경찰발전위원, 수목장실천을위한모임, 또 현재 울산지법 민사가사조정위원까지 전문적인 지식습득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30년간 이뤄졌다. 특히 그는 98년부터 법무부 범죄예방자원봉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보호관찰에도 앞장섰던 것은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시간.
 
당시 기억남는 일화가 있냐는 얘기에 그는 "당시 함께 봉사위원일을 하던 한 교사의 추천으로 삼호중학교에서 비행청소년들의 상담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몇 주마다 하루에 5명씩을 지도하면 됐는데, 그 때 아이들이 저를 먼저 신뢰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려고 걔네들 신상명세를 일일이 다 외우고 들어가서 상담에 임했던게 생각나요. 예를 들면 '수미야, 요새도 엄마가 아프시냐'하고 아이에게 먼저 선수를 치는건데 그럼 걔가 또 깜짝 놀라요. 그렇게 인간적으로 다가가 애들과 얘기도 나누고 진로를 함께 고민하다보니 나중에는 십수명 아이들 중 딱 한명빼고는 다 제자리로 돌아오더라고요. 그 한명에 대해선 지금도 마음이 쓰입니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선행이 이어지면서 통일부,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을 뿐 아니라 85년 전국KBS방송프로를 시작으로 지역 내 각종 언론사에서도 그의 봉사선행을 보도하기도 했다.

#30년 전 뇌졸중 투병 회생한 뒤 봉사의 삶 시작
그렇게 봉사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1941년 농소 원지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때부터 머리가 비상해, 당시 인근 명문고였던 경주고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지만 부유하지 않은 형편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결국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고졸임에도 당시 경주고에서 늘 수학 1등을 했던 그는, 동양ENG라는 한 설비회사에 수석으로 합격, 이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몇 십년을 엔지니어로, 오로지 일만 아는 사람으로 산다.
 
그러나 1980년.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3개월간 사경을 헤매게 되고, 천만다행으로 회복은 되지만 회사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그 때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고 했다. '내 한몸 건사하지 못하면 부귀영화도 소용없다' 이후 그는 그동안 돌보지 못한 삶을 챙기며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30년. 그동안 봉사를 하며 느낀 가장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봉사를 하면 우선 내 스스로가 행복해진다. 몸이 불편한 누군가의 방을 깨끗이 치웠다고 생각해보자. 비록 어깨도 욱신거리고 몸은 힘들겠지만 그 개운하고 행복한 마음에 내 삶이 윤택해진다"고 했다. 그는 또 "선의의 작은 행동 하나는 이렇듯 내 자신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며 "앞으로도 힘이 닿는한 나를 챙기고 내 주위를 챙기는 삶을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그는 "나는 평생 기계쟁이로 살아왔지만 요즘에는 글쓰기에 심취해있어요. 주변 문인들이 자꾸 나보다 더 성화를 내요. 글쓰라고. 앞으로 희수(77세)까지는 지금 써온 수필 몇 개를 모아서 그동안 살아온 얘끼를 담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수필집을 한 편 내고 싶습니다다"고 했다.
 
글은 처음에는 펜이 쓰지만 나중에는 삶이 쓴다는 말이 있다. 문기란 삶에서 나오는 것이듯, 그의 수필집 역시 그동안 힘든 삶의 굴곡에도, 남을 위한 따스한 희망을 펴온 그의 인생처럼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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