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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마지막 주말, 다시 반구대를 찾았다. 지난달 이곳을 찾았을 때 설핏 돌던 봄빛이 이제 완연하다. 암각화박물관에는 관광버스 두 대가 실어 온 관광객들이 원시의 내음에 심취한듯 사진찍기에 바쁘다. 10년만의 결실이다.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지고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반구대를 찾을 때만 해도 이곳은 숨은 그림이었다. 40년 전 고래 그림이 암면에 짙게 드러났을 때만해도 문화재 당국은 이곳을 외면했다. 당장 국보로 지정하고 종합적인 보존과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는 요란했지만 왜 보존해야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조차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났고 뒤늦게 국보 285호로 지정됐다. 말이 20년이지 강산을 두 번 넘게 바꾼 세월은 반구대암각화에게 수난의 시간이었다.

 역대 어느 청장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 애정이 남다른 변영섭 신임 문화재청장은 지난 주말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반구대암각화 보존 테스크포스(TF) 운영'을 골자로 하는 업무보고를 했다. 암각화 발견이후 침묵하던 문화재 당국이 이제야 반구대암각화를 제 것인양 관리하겠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 방치해 왔다고 해도 국가적인 보존 방안은 정도다. 문제는 암각화 보존 방법에 대한 이견이다. 사연댐을 젖줄로 하는 울산시는 물문제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학계는 울산시민의 물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외면한다. 침수의 원인인 암각화 인근 사연댐의 수위를 현재 60m에서 52m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울산시의 생태제방은 반구대 일대의 원형이 훼손되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1971년 암각화 발견 이후 40여년간 반구대암각화는 120여곳이 인공적으로 훼손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120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문화재 당국이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외면해온 세월 동안 전국의 대부분 사학과 학부생들이나 전공자들, 학계인사들이 솜방망이로 반구대암각화 암면을 두들겼다. 그 진동이 미세한 것이라고 우기지 마라. 진동은 고사하고 어떤 기관에서는 암면의 강도를 조사한다며 해머로 70여곳을 타공하기도 했다. 구멍을 낸 사례도 있고 쪼아서 뜯겨진 사례도 있다. 이 따위로 방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과거로 치부하고 이제와서 물이 문제란다. 맞는 말이다. 사연댐이 없었다면 지금의 보존 논란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을 논란거리다. 그런데 말이다. 사연댐이 어떤 구조물인가. 사연댐은 박정희 군사정부가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으로 울산을 지목한 뒤 첫 작업으로 시작한 구조물이다. 울산공업단지의 용수를 해결해야 공장의 검은 연기를 울산 하늘에 뒤덮을 수 있다는 필연적 논리로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수계를 막았다. 유역 면적이 무려  124.5㎢, 홍수위 63.2m, 만수위 60m, 저수위 45m이고, 저수 총량 2,500만㎥, 유효량 2,000만㎥이며 용수 공급은 3,600만㎥이다. 이 댐을 막아 사용한 50년 세월동안 울산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했고, 석유화학공단은 수출전진기지로 이 땅의 가난을 몰아냈다.

 그 세월을 잊어버린듯 말하지 말자. 6,000년전 반구대인들이 이 땅에서 풍요의 제의의식을 올린 역사가 귀중한 만큼 조국근대화의 희생양이 된 울산의 지난 50년도 사무치는 우리의 역사다. 원형보존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명함에 반구대암각화를 새기고 다니는 인사들은 그 모두를 담보하고 반구대암각화를 바라봐야 한다. 가끔 목젖을 세우고 문화를 이야기하고 보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애정으로 비치고 절대가치로 비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반구대암각화는 지금 일년의 절반 이상 물 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다. 그 자맥질의 원인제공자는 다름 아닌 정부였다. 원인제공을 한 정부가 이제와서 물을 빼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그 때 그사람이 아니기에 할말이 없어진다. 갈등의 출발지점을 제대로 짚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지금 그 부분이 실종됐다. 원형보존은 지고의 가치가 됐고 생태제방은 울산의 억지주장으로 폄하되는 양상이다.

 다시 반구대암각화를 정면으로 마주해 보자. 반구대암각화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선사인들이 봄날의 시작과 함께 풍요의 신, 전능한 대자연의 신에게 제의를 행하고  울산 앞바다로 배를 띄워 포경에 나선 발원의 상징물이다. 어디 그 뿐인가. 반구대 암각화의 지정학적 상황은 절묘하다. 암각화 맞은 편에 펼쳐지는 언덕과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산과 골짜기는 대한민국 선사문화의 일번지다. 대곡천 위쪽의 천전리 각석부터 사연댐 입구의 반구대암각화까지 두 암각화 사이엔 오묘한 기운이 흐른다. 원시 신앙의 발원지이자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곡선과 직선으로 만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문명국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문화원형을 어떻게 보존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선동과 반박, 편가르기와 흠집내기로 보존논란을 키우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사연댐을 부숴버리고 1963년 이전의 반구대암각화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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