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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옅은 잠이 더 가벼워졌다
거실 한 켠에선 겨우내
더부살이에 지친 데코라고무나무와 호접란이
심심한 베란다를 연신 훔쳐보고 있다
조간신문에 밀리던 아침우유가
엘리베이터 버튼 9를 선점했다는
낭보가 불쑥 날아들었다
아내가 아침잠마저 녹여 구워 내는
식빵의 노릇함도 예사롭지 않다
며칠째 8층에서 차오르는
냉잇국의 구수함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거뜬할 것 같다
조율이 끝난 10층의 현악기가
리허설을 막 시작했다
층간소음을 층간화음이라 불러도 좋겠다
갓 깨어난 조간신문이 나를
꼼꼼히 읽어 내리는 시간,
어머니는 너그러운 해몽으로
각본 없는 삼월을 저울질하고 있다

■ 시작노트: 지난겨울이 막 시작될 무렵, 어머니가 울산집을 정리하고 상경하셨다. 어머니는 묵은 외로움을, 나는 빛바랜 그리움을 지웠다. 낯선 곳에서 혹독했던 지난겨울의 추위를 잘 삭여 낸 어머니. 옅은 잠으로 삼월의 새벽을 열며 개화의 비밀을 엿듣고 계신다.
■ 약력: 울산 출신. <지구문학>으로 시, <한국산문>으로 수필 등단. 전국대학생문예 소설 대상. 제3회 백교문학상 수상. 시집 <그리운 것은 아름답다>. relief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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