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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민족 정서는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민족 정서란 언제나 그 나라의  내력과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마련이다. 올해로 삼일 독립 운동이 94년째를 맞이했다. 삼일 운동의 물결이 울산 중구 병영까지 내려 온 것은 4월 5일이다. 이 날을 기념해 울산광역시와 울산 병영 삼일사 봉제회와 민관이 하나로 힘을 모아 삼일 운동의 맥을 거듭 잇기 위한 재현 행사를 14년째 해오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은 늘 뜨겁다. 지난 5일 치러진 병영 삼일 운동 재현 행사 공연에 14년째 일본 순사 대장이라는 악역을 맡은 필자로서도 감회가 새롭다.

 14년 전 초현때 일본 순사 대장 역할로 분장을 하고 헌병들과 병영시장 뒷골목에서 독립군들과의 대치를 위해 정열하고 있었다. 90세가 넘은듯한 노파께서 지나가시다 우연히 우리 일본 헌병들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시며 걸음을 멈춰 " 여기서 왜 이러고들 있습니꺼?" 하시기에 자중하시라며 지금의 재현 상황을 말씀 드렸더니 그제서야 굳은 얼굴을 펴시며 두 손을 잡고 응원을 해 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에그! 오래전 그때가 다시 생각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심더! 우리 그 당시엔 모두들 입만 벙긋하면 죽은 목숨들이었심더! 아휴! 말도 마이소!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더!" 당시 그 말을 들은 필자는 괜시리 눈을 들 수 없고 죄송해 뒤돌아 서 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었다.

 4월 5일, 악역을 대표하는 일본 순사 대장을 맡은 역할이라서 이른 아침부터 행사장에 서둘러 갔다. 독립군으로 분장한 울산 연극인들과 시립 무용단원들, 병영삼일사 봉제회원들과 각 동에서 지원 온 시민들과 취재진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모여든 군중들로 이미 행사장이 분주했다. 독립군들과 메인 무대에서의 리허설을 끝내고 병영 시장길 위에서의 대치 장면을 위해 헌병들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병영 초등학교에서의 독립선언식후 병영 삼거리로 몰아쳐 내려 올 독립군들과 대치하기 위해 대한민국 현역 군인들 20명을 일본 헌병 옷을 입히고 세워 총을 한채 대치 중였다. 이른 아침부터 몰려온 시민들은 대한 독립 만세의 두건을 두른채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길 가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어린 유치원 아이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며 지난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를 역사속에서 지워 버릴 수 만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일본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는 지우고 왜곡하는 뻔뻔스런 만행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지난 역사를 보면 현재와 미래까지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울 수 없다. 피로 물든 역사라 하더라도 역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항존하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빡빡 문지르며 닦아내고 지우려 암만 애를 써 보아도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훤히 비추고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흥망성쇠, 밝음과 어둠, 희·비극의 역사도 우리가 품고 가야할 소중한 역사인 것이다.

 옛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는 남을 해롭게 하는 정서라기 보다는 남을 널리 이롭게 해온 정서에 더 가깝다. 그리고 억압가운데서도 굴하지 않는 민초들의 의연한 기상은 역사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다. 그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의 정신이 후세인 우리가 역사속에서 배운 우리 민족의 정신인 것이다. 선하면서도 의연하며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의 민족 정서다. 94년전 우리 민족의 그 의연한 민족 정신이 2013년 4월5일 힘차게 외치는 삼일 독립운동의 만세 삼창으로 병영성 일대를 만개한 벚꽃잎 마냥 흩어져 날리고 있었다.

 14년전 초현때 만났던 90세가 넘으신 그 할머니가 다시 떠오른다. 94주기 14년째를 맞이한 이번 병영 삼일 운동 재현 행사때도 만약 아직 살아계신다면 오셔서 보시며 지난번처럼 마음으로 응원 해주셨으리라 믿는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는 역사 속의 사실들을 사실대로 문화의 형태로 보존하고 발전 계승시켜 나갈 사명을 지니고 있다. 내 고장 울산에서도 기개가 넘치는 대한 독립만세의 함성이 병영을 비롯해 남창, 언양에서도 일어났던 역사를 후세들에게 알려주는 이번과 같은 재현 행사가 계속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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