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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이웃을 둔 공동체는 불편하다. 사람이든 국가이든 관계의 기초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인정하기 싫다고 도려낼 수 없는 것이 공동체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 질서를 무시하면 공동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다. 지난주, 지구촌 공동체에 너무나 다른 두 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바로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와 관련한 뉴스였다. 히틀러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시절, 나치 친위대 소속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간수였던  한스 리프시스가 주인공이다.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그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 미국과 독일을 떠돌며 은둔 생활을 해왔지만 그를 추적해온 독일 검찰은 90대의 고령인 그를 끝까지 추적해 검거했다. 이와관련 메르켈 총리는 "나치 정권의 실상을 인식하고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는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불편한 뉴스는 일본이다. 엔저 공세로 장기불황 탈피에 성공한듯한 일본의 아베정권은 무더기 망언 시리즈와 망동을 거듭하고 있다. 압권은 과거 제국주의시대 일제가 저지른 침략행위를 전면 부인하는 대목이다. 아베는 "침략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계나 국제적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국가간 관계에서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발언을 했다. 궤변이다. 잠자코 있던 미국의 언론들이 아베의 발언에 주석을 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을 누가 일으켰는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느냐에 대한 의문과 마찬가지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고 보는데 유독 아베 일본 총리만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의 역사적 상대주의 이론은 진주만 공습과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희생자를 낸 '바탄 죽음의 행진', 중국에서 자행된 난징대학살 등의 생존자들을 경악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아베의 발언이지만 총리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뉴스의 가치가 더해지는 모양이다. 하기야 누군가의 지적처럼 한일관계는 잠복기의 감기증세 같은 것이어서 정치적 환경이나 국제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악성바이러스로 변질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아베의 발언을 두고 그가 가진 뿌리깊은 국수주의적 의식구조와 가문의 내력을 이야기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아베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가진 역사인식의 근본이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현재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 가운데는 과거사에 대한 바른 인식에 기초한 지식인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원천적으로 미화된 과거사를 공부한 다음 세대가 일본의 중심이 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이 다음 세대의 역사교육에 미화된 역사, 왜곡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을 올린다면 미래의 한일 관계는 더욱 불편해진다. 불쾌한 이웃이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면 이 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일본과 마주앉을 필요가 있다. 그 출발은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주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탈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의 법칙'중 하나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해가며 가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에서 벗어난 왜곡은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일본은 이 같은 조작 행위에 익숙하다. 여기에는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역사 치매현상'도 한 몫 한다"

 박노자 교수의 말에 한마디를 덧붙이면 일본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조작의 뿌리가 열등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열등감은 우리 근대화 과정에서 양산된 수많은 졸부의 자화상과 같다. 족보를 고치고 학벌을 세탁했던 우리의 졸부들과 뿌리를 부정하고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모습은 흡사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도요카와 젠요라는 일왕의 개가 '경성천도론'을 주장했던 것이나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일본인 800만 명을 경성으로 이주시키려는 음모도 과거를 완전히 덮으려 한 그들의 과거사 콤플렉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을 반복해야 하는 일본의 정치인들도 딱하지만 거짓의 논리화에 매달리는 역사학계의 지식인 그룹은 21세기의 전쟁범죄자다.  지워 없애고 새로운 근거를 집어넣는 날조된 역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욱일승천기를 들고 여전히 세계사에서 '갑'으로 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의 망언을 방치하고 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왜구의 유전인자가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활성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반성하라는 질책이 아니라 너희의 할아버지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뒤져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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