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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아침을 연다. 거울 앞에서 눈곱을 떼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여미고 화장을 하고 손을 씻고 세수를 하며 또 거울을 본다. 하루의 시작이 기쁘고 즐거워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거울이고, 아프거나 힘들어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거울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거울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원하던 곳의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나 뜻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환희와 행복이 실감나지 않아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안 기뻐? 하고 물어본 적도 있고, 더러는 혼자 눈물 흘리다가도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멋쩍어하거나 울음 울던 이유를 상실해 눈물을 거둔 때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가 가까이 있다 해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스런 말들을 거울 속에 속삭이듯 털어놓기도 하고 다툼이 있었던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나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놓을 때도 있다. 어떤 땐 늙고 볼품없이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슬퍼하기도 하고, 그런 나를 향해 위로나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거울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내 생활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 나와 교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 가까이 거울을 두고 애완동물 이상으로 교감하고 사는 것은 나뿐 아닐 것이다. 여자들의 핸드백이나 여학생들의 가방 속에서 거울을 만나는 것도 같은 이유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을 때 역시 거울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거울에서 거울의 역할 이상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동화 백설 공주에서 나오는 요술거울은 진실을 말해주는 거울, 육조단경에서는 육조 혜능 스님과 신수스님의 게송에서도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거울이 등장한다. 거울이 반조하는 진실이거나 혹은 참 마음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은 유난히 거울 하나에 집착하셨다는데, 스승이신 효봉 스님께조차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오랜 후에 밝혀졌다 한다. 스님이 집착을 보였던 거울은 스님이 처음 삭발한 것을 지켜본 바로 그 거울이며, 거울 뒷면에는 스님의 삭발 날짜가 적혀 있었다 한다. 삭발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수행이 흐트러질까 염려하여, 거울을 들여다보며 칼날 같은 초발심을 지키려 간직하고자 했다하니…이런 집착이라면 참 아름다운 집착이지 않겠는가.

 맨 처음 무소유를 읽었을 때의 전율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가난과 전쟁으로 피폐하고 궁핍했던 육십 년 대 칠십 년 대를 지나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 그 이후, 하나라도 더 가지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내 남 없이 악착을 떨었던 그 시기에 정신이 번쩍 들게 주장자를 든 분이 법정 스님 아니시던가. 소유가 걸림이 된다는 그 뜻이 주는 울림이 참 컸었다. 그렇다고 소유 자체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지나친 소유나 집착에서는 멀어지자고 마음먹게 한 바로 책을 쓰신 스님이 간직한 거울의 의미 또한 컸으니.

 눈을 감으면 눈 안에서조차 나뭇잎들이 윤을 내며 뻗어가는 계절의 여왕 오월에 총총 박혀 있는 행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처음 시작할 때야 얼마나 큰 뜻이 있었으랴. 해를 거듭하면서 의미는 퇴색되고 누구보다 더 크고 더 멋있어 보이는 행사 그 자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나를 위하고 내 가족을 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다른 사람의 입을 의식해서 더 화려하고 실속보다 겉치레 과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올해는 선물의 크기와 무게를 재는 연중행사에서 벗어나 진실한 마음을 비춰주는 예쁜 손거울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과학이 날로 발전하는 요즘 가능할 것 같은 꿈 하나를 꿔본다. 누군가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을 발명해 시청사나 관청 앞에 걸어 둔다면, 부패로 얼룩진 사람들은 지나다니며 법이 나서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 반성할 수 있을 것이고, 혹 오해로 멀어진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친구나 친척들이 와서 비춰본다면 진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오해가 사랑으로 바뀌는 기적을 주는 그런 거울이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신이 난다. 업경대란 말은 들어보았지만 심경대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작지만 소중한 그런 거울이 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신록보다 더 반짝거리며 윤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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