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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한국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번역가로서 소아마비 장애와 암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실천했다.


 1952년 9월 14일 서울에서 영문학자 장왕록의 딸로 태어난 그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 됐으나 역경을 딛고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번역가, 수필가, 칼럼리스트, 중·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번역서로 <종이시계>, <햇볕 드는 방>, <톰소여의 모험>, <이름 없는 너에게> 등이 있고 부친(故장왕록 박사)과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살아 있는 갈대>를 번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해 '한국 문학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엔 삶에 대한 진지함과 긍정적인 태도를 담은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추암을 이겨낸 뒤 다시 강단에 섰다가 2008년 간암으로 전이, 2009년 5월 9일 사망했다.


#에피소드
1978년 1월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아침에 서울 A대학교의 박사과정시험이 있었다. 스물여섯의 여학생이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하는 교수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한 교수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리는 학부에서도 장애인은 받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 순간은 혹독하게 어려운 스물 여섯해를 살아온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한 살 무렵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고, 다섯 살까지 자리에 누워만 있어야 했다. 매일 아침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딸을 업고 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장애를 평생 지녀야 하는 딸의 인생을 살리기 위해선 교육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딸을 위해 아버지는 학교마다 사정을 하고 다녔다. 그렇게 딸은 아버지의 노력으로 중고등, 대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탁월하게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한국사회는 그녀에게 직업을 주지 않았다. 스물 여섯의 이 여성은 더 공부하기를 원했으나 모교인 서강대에 박사과정이 없어서, 인근 대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으나 거절당했다. 이 여성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음해 뉴욕주립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른다.


 장영희 교수가 박사과정 시험을 본 때의 이야기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9년 유족들은 서강대에 3억5,000만 원을 기부했다. 장 교수의 인세와 퇴직금을 모은 돈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걱정했던 고인의 뜻을 기려 서강대는 이 돈으로 장영희장학금을 만들었다.


 장 교수와 유족들의 '서강 사랑'이 남달랐던 이유가 있다. 장 교수가 대학입시를 치를 무렵 장 교수를 받아주겠다는 대학은 없었다. 두 다리의 장애 때문이었다. 장 교수의 아버지는 서울의 유수 대학의 입학처장과 교수들에게 입학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그러다 찾아간 곳이 서강대였다. 당시 영문학과장 브루닉 교수는 "입학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느냐"며 장 교수가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후 장 교수는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77년 서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학후엔 모교로 돌아와 전임강사로 일했다. 대학측의 이런 배려 덕에 장 교수는 서강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최근 인기작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한데, 세상은 날개를 펼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조차 허락치 않았습니다. 나 좀 살려달라고 매달려도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천덕꾸러기이고, 삶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내 사랑은 짝사랑일 뿐이구나. 오랜 세월 짝사랑이 쌓이면 분명 그 사랑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보상에 연연해서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고 열심히 짝사랑하십시오"


 3년 전 타계한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가 어느 여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살아온 날들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 등 다수의 책들을 통해 '희망전도사'로 불렸던 저자가 생전에 삶과 사랑, 그리고 청춘들에게 들려줬던 문학강의를 묶은 책이다. 글과 달리 말은 늘어지게 마련인데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책을 많이 읽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던 그. 완쾌된 줄 알았던 유방암이 척추로 전이됐을 때도 문학의 힘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져 살갑고,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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