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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혁 교수가 약물 치료중인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1996년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궜던 사연이 있었다. 미 공군사관생도인 성덕 바우만. 한국인 입양아로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유일한 치료인 골수이을 위해 친 혈육을 찾아 한국에 왔으나 골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사연이 전국적으로 보도된 후 성덕 바우만은 지방의 한 청년으로부터 극적으로 골수를 이식 받아 새 생명을 찾았다. 2001년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등장하면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골수이식이 유일한 치료이던 절망의 질병을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만성질환의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다. 최근에는 스프라이셀을 필두로 타시그나, 수펙트, 보수티닙, 포나티닙 등 2세대 표적항암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어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완치의 꿈을 곧 실현하게 될 전망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CML : Chronic Myeloid Leukemia)의 발병원인과 진단, 표적항암제 치료에 대해 울산대병원 혈액내과 김혁 교수에게 들어봤다.


# 9번과 22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발현
백혈병은 혈액 및 골수에 생기는 암으로 백혈병이 발병하면 몸에는 지나치게 많은 비정상적인 백혈구 세포가 생성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혈구인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의 생성은 감소한다. 백혈병은 병의 진행속도와 패턴, 유전자적 변화 등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눈다.
 

염색체 이상 비정상적 백혈구 생성
우리나라 평균 45세 젊은나이 발병
1·2세대 치료제 등장 생명 연장 실현
급사 등 위험 이상반응 동반할 수도
가족력 등 고려 자신에 맞는 약물 복용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염색체의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의 일부가 자리를 바꾸어 생기는 필라델피아 염색체(Ph)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만들어지면 BCR-ABL 유전자라는 새로운 암 유전자가 생기게 되며 비정상적인 BCR-ABL 암 융합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 단백질은 세포질 내의 여러 기질 단백질을 자극해 전달된 신호가 혈액세포의 핵 속으로 전달되면 혈액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이 일어나게 되고, 각종 혈액 세포들의 수명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게 돼 만성골수성백혈병의 특징적인 증상과 인체의 여러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성인 백혈병의 약 15% 정도로 나타나며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인구 10만 명당 0.55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약 300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생기는 것으로 추산) 서양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평균 발병 연령이 주로 55~60세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 연령은 45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특징이 있다.


 백혈병은 혈액검사를 통해 진단하지만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조기 발견이 쉽지는 않다.


다만, 만성 백혈병의 경우에는 증상이 없을 때 건강검진 시 시행하는 혈액검사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빈혈 수치만 나오는 혈액검사가 아니라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 수치까지 나오는 혈액검사가 필요하다.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리면 병의 발견이 늦어지면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치료를 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가 힘들어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한 조기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세대 표적항암제
1세대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이 만성골수성백혈병을 만성질병의 대열에 끌어올린 기특한 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내성을 보이거나, 효과가 불충분하게 나타나거나,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었다.


 글리벡이 출시된지 6년만에 스프라이셀을 필두로 한 2세대 표적치료제가 속속 등장했다. 2세대 표적치료제의 경우 글리벡보다 더욱 강력한 효과로 초기에는 글리벡 치료에 실패한 환자나 글리벡의 부작용으로 약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승인됐지만,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복용 경험이 없는 환자에게서 글리벡보다 빠르고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인 것이 입증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새롭게 진단 받은 환자들에게 초기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이같이 뛰어난 효능은 물론 약 복용의 편리성과 경제성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 2세대 표적치료제의 발전으로 질병의 완치시대를 열게 됐고 환자들은 장기 생존을 보장받게 됐다.

#표적치료제 이상반응 관리 신중히
이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암 자체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동반질환이나 특히 평생 복용해야 하는 표적치료제의 다양한 이상반응을 관리하는 것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예후가 좋아서 오래 살수록 암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표적치료제의 이상반응은 관리가 가능한 것도 있지만 급사를 불러오는 위험한 증세도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간질환, 폐질환 등의 동반질환으로 앓고 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환자들은 표적치료제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고혈압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4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만큼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도 4명 중 1명은 고혈압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세대 표적항암제 중 일부 약제는 부작용으로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 고혈압이 있는 환자가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갖고 있는 약제를 선택할 경우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말초동맥폐쇄성질환 등의 심각한 심혈관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 국외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하던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가 있고 혈관이 좁아지는 말초혈관폐색으로 인해 다리절단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또한 약제에 따라 흉막삼출, 폐동맥고혈압, 간수치 증가나 황달을 발생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약마다 또는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 환자의 기저 질환과 약의 부작용/효능, 현재 복용 중인 약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환자에 맞는 약을 선택해야 한다.

#꾸준히 약물복용·정기적 검사 중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조혈세포이식을 시행하지 않는 한 일생 동안 치료제를 복용해야 하며 처방에 따른 꾸준한 약물복용과 함께 정기적인 병 상태 확인을 위한 검사가 치료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 또한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글리벡의 경우는 하루에 한번 4정을 반드시 식사 도중 혹은 식사 직후 많은 양의 물과 함께 삼켜야 한다. 복약 순응도가 90% 이하면 치료효과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90% 이상의 복약 순응도를 지키려면 한 달에 3번 이상 약 복용방법을 어기면 안 된다는 얘기다. 즉 일주일에 한번씩 어기면 이미 치료실패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에 글리벡을 5년 이상 복용하고 2년 이상 유전적 관해를 보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글리벡을 중단하는 임상시험을 시행한 결과를 보면 약 70%에서 성공적으로 약물 중단이 가능했고, 약물 중단 후 재발한 환자들에게는 다시 글리벡을 투여해 모든 환자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글리벡 뿐만 아니라 약효가 더 우수한 2세대 약물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약을 중단하는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이제 약물 치료만으로도 완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이러한 질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현재 사용 가능한 수 많은 약 중에 환자의 동반질환, 가족력, 생활습관 등을 고려해 환자 특성에 맞는 가장 적합한 약물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백혈병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는 전문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백혈병이 아닌 다른 질환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환자와 의사 모두의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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