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골 가는 길에 파랗게 펼쳐진 보리밭을 만났다. 차에서 내려 연둣빛 이삭이 성큼 올라온 보리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자 보리밭은 햇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처럼 가볍게 살랑거리다가, 차츰 깊은 강에 물 주름이 지듯 일렁거리다가, 이내 파도의 물이랑처럼 출렁거리며 우쭐우쭐 춤을 춘다.

 바람 부는 보리밭을 보니 19세기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란 시가 생각난다. "내 사랑하는 여인과 초록빛 언덕 아래 있었네/슬픈 마음은 두 갈래로 흔들리네/옛사랑과 새로운 사랑의 번민으로/그녀를 향한 오래된 사랑/나의 새로운 사랑은 조국 아일랜드를 생각하네/골짜기 아래를 스치는 미풍 황금빛 보리를 흔드네/우리의 연대를 깨뜨릴 저 상처의 말들보다/우리를 둘러싼 침략의 족쇄가 더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인 것을/그래서 난 말했지/이른 아침 나는 산골짜기로 올라가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로 가네/미풍이 불어와 황금빛 보리를 흔들어놓았네"

 아일랜드는 8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영국의 압제를 받은 나라이다. 이 시는 1798년 부활절 봉기에 뛰어 들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 했던 한 젊은이의 운명을 노래한 시로, 켄 로치 감독은 2006년에 이 시의 제목과 같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을 그렸다. 영국과의 치열한 투쟁 끝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지만 그 협정이 남아일랜드의 자치만을 허용하는 것임이 밝혀지자, 협정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가자는 형과 아일랜드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전면 투쟁을 주장하는 동생은 서로 대립하게 되고, 둘의 갈등은 결국 형이 동생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내용이다.

 서정적인 제목만큼 영화에는 초록 혹은 금빛으로 넘실대는 아일랜드의 들판이 자주 나온다. 영국에 저항하는 IRA(아일랜드 공화군)는 이 들에 깃들여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시나 영화에서 보리밭이란 아일랜드 민중을, 바람이란 그들을 억압하는 영국과 같은 외세를 상징한다 할 것이다.

 켄 로치의 영화가 아니라도 보리는 흔히 민중이나 서민, 민초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보리의 성격이나 한 살이 모습이 그들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싹이 난 채로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봄을 맞는다. 아직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있는 들판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으며 추운 겨울이 다 갔음을, 봄이 멀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졸음에 겨운 듯 아득히 펼쳐진 하늘 아래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꽃다지며 민들레며 봄맞이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이른 봄날, 보리는 푸르게 기지개를 켜면서 맹렬히 자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월이 되면 보리는 이삭이 다 패어 통통하게 여물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듯이 이때는 벼나 옥수수, 고구마나 감자 같은 갈무리해 둔 양식이 다 떨어져 배고픔에 하루 해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그러면 아낙들은 미처 익지 않은 풋보리를 베어내 죽을 끓였다. 이것을 풋바심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닝닝하고 멀건 풋보리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망종 무렵의 유월, 보리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 황금빛 이삭을 무겁게 매달고 대지의 빛깔을 띠며 서있다. 대지 자체가 조용히 숨을 쉬며 자연의 부름에 응하는 추수의 때가 된 것이다. 한 겨울의 추위를 이긴 보리와 보릿고개의 고달픔을 이긴 사람들이 만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보리는 낫으로 베어질 때까지도 꼿꼿하다. 이삭 끝의 터럭은 제법 억세고 날카로워 일쑤 추수꾼의 손이나 목덜미를 할퀴고 옷섶으로 파고든다. 저항의 몸짓이다. 터럭은 억세지만 그 줄기는 놀랄 만큼 매끄럽고 부드러워 보릿짚으로 여치집이나 인형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면 산더미처럼 쌓아올려진 보릿짚을 태워 벼를 키울 거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대지에 밀착해 자라다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보리야말로, 삶을 곤곤하고 지난하게 만드는 세상의 바람을 꿋꿋이 감내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모습이다.

 이제 보릿고개도 사라지고, 보리를 심는 농가도 드물어 보리밭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삶의 무게와 곤고함이 예와 다르겠는가. 바람이 분다. 보리밭이 흔들린다. 폴 발레리의 말이 옳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