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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았다.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69개 사회적 갈등과제 가운데 첫째로 거론되는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를 국무총리실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정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작심한듯 "울산시는 물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재를 보존할 책무와 자긍심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 총리의 발언을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문화재에 대한 총리의 애정을 표현한 것이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물 문제를 전제로 하는 울산시를 비판하는 의미로 읽힌다.

 바로 이 지점이다. 정 총리 만이 아니라 울산시와 상당수의 울산시민을 제외하면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있어서 물문제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지난 주말 서울에 머물며 몇몇 지인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반구대암각화 문제가 화제로 올랐지만 한결같은 반응은 물을 빼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논리였다. 물에 잠기는 국보를 보호하는데 물을 빼면 그만이지 무슨 다른 방법을 이야기 하느냐는 식이다. 간단하다. 간단하다 못해 선명한 이 방법이 서울식 해결방안의 핵심이다. 울산시민의 식수는 서울식 관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연댐이 울산시민의 식수원이자 청정 수역이기에 이 물을 빼는 것은 울산시민들의 생존권과 바꾸는 문제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에겐 공허하게 들린다. 이른바 '서울식 사고'다.

 그 대표적인 인사가 지금 문화재청 수장으로 앉아 있는 변영섭 청장이다. 반구대청장을 자처한 그가 울산의 물문제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는 청장 취임 이후 간헐적으로 울산시민들을 자극했다. 국보가 물에 잠긴다, 반구대가 울고 있다 는 툭툭 던지는 한마디 속에 울산시민들을 향한 비난의 무게를 실었다. 그가 속해 있는 예올회의 대표도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울산시민들이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돌려 말하면 울산시민들은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서울식 사고의 핵심이다.

 서울에서 보면 울산은 시골에 지나지 않고 시골에서 서울의 해법에 반기를 드는 것은 가소롭다는 식은 지난 정부 때부터 줄곧 이어진 갈등의 핵심이다. 문화재청과 산하단체 등에서는 한결같이 울산시와 지역언론, 이에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을 비난해 왔다. 비난의 핵심은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법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지몽매한 시골사람들이 감히 서울의 방법에 반기를 들고 나오느냐는 식이다. 정 총리가 지난 주말 반구대암각화에서 던진 한마디의 근원도 여기서 비롯된다.

 우려할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문화관련 인사들의 서울식사고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은 언제나 '갑'이다. 이 땅의 지식인 사회는 어쩌면 사회적 자아가 싹틀 무렵부터 서울이라는 '갑'을 동경하고 그 갑의 사회에 속하기를 갈망한다. 어떤 곳에서 태어났든 '갑'으로 편입되는 순간, 을은 시골이자 시혜의 대상이며, 길들임의 대상이다. 가끔 찾아가 갑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을의 편을 드는 발언으로 우상화를 진행하는 것이 이 땅의 지식인 사회가 가진 '갑질'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울산 사람들은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관심이 없을까. 진정으로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문화재청은 울산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반구대암각화의 발견은 서울의 역사학자들이 학자적 근성과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잠겨 신음 소리를 낼 때 이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존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문화재청도 총리실도 청와대도 아니었다. 지역언론이 맨 앞줄에 섰고 지역의 지식인 사회가 이에 동조했다.

 10여년 전, 반구대암각화를 방치하는 문화재 당국의 실태를 고발하고 이를 질책하며 우리 스스로 이 땅의 문화재를 살려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목이 터져라 외친것도 서울이 아니라 울산사람들이었다. 가치도 그렇다. 공식적인 학술적 조사가 여러차례 이뤄졌지만 이를 국민적 관심사로 만든 것은 문화재 당국이 아니라 울산의 학자들과 울산의 언론들이었다. 이 땅의 역사를 단군조선 이후로 축소한 일본 황실의 어용학자들이 죽어도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민족의 이동경로가 반구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울산사람들 만큼 잘 아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우리민족의 시원을 찾아 반구대로 향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이들중 대부분은 울산시민들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사실은 폄하하고 울산을 시골로 치부하며 가치를 운운하고 무지몽매함을 에둘러 표현하는 서울식 사고는 여전하다. 바로 이 지점이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반구대암각화는 물에서 온전히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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